"일단 은행으로 가봐야지 어떡하겠어요."
1일 오전 10시께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서울서부센터. 한 손에 서류 뭉치를 든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렸다. 대출 신청을 하러 왔지만, 오전 7시 30분 이미 마감됐다는 말에 허탈감만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류를 준비해 이곳을 찾았다가 되돌아가는 수십 명의 사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상공인 1000만 원 긴급 대출' 시범 운영을 마치고 이날부터 본격 시행에 나섰다. 금리 1.5%를 적용해 상환 부담을 줄였고, 이날부터 대출 신청 홀짝제를 시행해 병목 현상과 창구 혼잡을 최소화했다. 1일은 출생연도 끝자리가 홀수인 사업자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고신용자(1~3등급)는 시중은행이, 4등급 이하는 소진공에서 집중하도록 역할도 나눴다.
긴급 대출 정책이 시행됐지만, 기자가 만난 소상공인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정책과 현장의 괴리가 너무 크다며 고개를 떨궜다. 한 소상공인은 정책이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팔뚝만 내밀면 수혈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발표는 당장 오늘 될 것처럼 하더니 막상 와보니까 그게 아니다"라며 "나처럼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은 은행을 이용하지도 못하는데 대출이 늦어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출 금액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사람도 눈에 띄었다. '소상공인 1000만 원 긴급 대출'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1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의 신용등급 등에 따라 대출 금액이 각기 다르다. 중기부는 한정된 예산에서 많은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지원하려면 필요 이상의 금액을 대출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김정훈(65ㆍ가명) 씨는 "1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는 줄 알고 왔더니 사람마다 대출 가능 한도가 다르다고 하더라. 한도가 80만 원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데 그럴 거면 뭐하러 이 많은 서류를 챙겼겠느냐"라며 "간편하게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시중 대출보다 챙겨야 할 서류는 더 많다"고 불평했다.
소상공인이 답답함을 호소하는 와중에 소진공 직원들은 시시각각 들어오는 사람을 상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고신용자들은 은행으로 가는 편이 더 빠르다는 안내를 빼놓지 않았다. 일부 고신용자들은 은행에서 대출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 소진공을 찾았다. 이 때문에 현장 직원의 업무량이 가중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대출이 마감이 끝난 시간, 소진공 직원들은 민원인의 신용등급을 조회하고 관련 내용을 추가로 안내하며 그들을 달랬다.
인터넷 신청에 대한 안내를 수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소진공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현장 접수를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터넷 사전예약을 통해 대출을 진행한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으려면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서 안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접수를 할 수 있다. 대출의 총량이 정해져 있으므로 늦게 접속하면 대출 신청이 어렵다.
소진공 한 관계자는 "현장 접수는 권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신청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자금이 소진돼 대출을 못 받을 것을 염려한 소상공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며 "한두 달 정도는 여력이 있다. 버틸 수 있는 소상공인은 조금 천천히 대출 신청을 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사람이 현장 접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뜻이다.
시중은행에서도 이날부터 홀짝제를 시행해 긴급 대출 신청을 받는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IBK 기업은행은 오전에만 40명에 가까운 사람이 찾아와 대출 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은행과 소진공으로 긴급 대출 수요를 분산한 것 같다"며 "마스크 대란이 해소된 것처럼 대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