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청소년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만들어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주빈(24)이 첫 재판에서 주요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아동 강제추행과 강간 미수 등 일부 혐의는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이현우 부장판사)는 29일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씨와 전직 공익근무요원 강모(24) 씨, '태평양' 이모(16) 군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진행했다.
공판준비기일은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듣고 향후 입증 계획을 짜는 절차로 피고인의 출석 의무는 없다. 그러나 조 씨와 강 씨는 녹색 수의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법정에 나왔다. 이 군은 불출석했다.
조 씨의 변호인은 "아동 강제추행·강요 및 강요 미수·아동 유사 성행위 및 강간 미수 혐의 중 일부는 각각 부인한다"며 "음란물 제작 및 유포와 아동에 대한 음행강요 등 나머지 범행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다퉈야 한다"며 "유사 성행위를 하게 한 혐의가 강간 혐의와 별도로 성립될 수 있는 성격의 범죄인지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 씨의 변호인은 "조 씨와 영상물 제작을 공모하지 않았다"면서도 "스폰서 광고를 모집한다는 홍보 글을 올려 피해를 발생시켰으니 일정 역할을 한 셈이라 그 책임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자리를 빌려 피해자 가족들에게 피고인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고교 시절 담임 교사를 협박한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자백한다"고 덧붙였다.
태평양 이 군의 변호인도 "공소사실을 대체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조 씨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성 피해자 25명을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촬영하고 텔레그램 '박사방'에 판매·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확인된 피해자 가운데 8명은 아동·청소년이다.
피해자를 협박한 뒤 공범을 시켜 성폭행을 시도하고 유사 성행위를 하도록 한 혐의, 5명의 피해자에게 박사방 홍보 영상 등을 촬영하도록 강요한 혐의, 피해자 3명에게 나체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등도 포함됐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취재진을 만난 조 씨의 변호인은 "대부분 범죄사실은 인정하지만, 사실관계가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며 "대다수 협박은 인정하나 성범죄 원인이 협박 등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부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씨가 깊이 반성하고 처벌을 달게 받을 각오를 하고 있어 오늘 출석했다"며 "수십 개 범죄 중 한두 개를 부인한다고 형량이 달라지진 않으니 이를 깎겠다는 의도는 아니고, 형사 소송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라 일부 부인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재판 후 배포한 자료에서 "피해자와 가족의 2차 피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상을 식별하거나 암시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말고, 피해 사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피해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이들은 "언론의 범죄사건 보도는 범죄 예방과 사회정책적 대책 마련 등 공익 달성이 본연의 목적인 만큼 남성 중심적 성문화와 그릇된 성인식, 여성 안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범죄예방 체제의 미비 등 성범죄를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더 주목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