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라…간이회생절차 개선책 실효성 낮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회생ㆍ파산 신청이 급증할 전망이다. 이미 징후는 나타나고 있다. 최근 회생과 파산 관련 상담을 위해 로펌을 찾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 '폭풍전야' 속 서울회생법원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서울회생법원 전대규 부장판사는 9일 “금리가 낮아지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어 기업들이 당분간은 버틸 여력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하반기가 되면 한계에 부딪히고 결국 (회생ㆍ파산 신청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전 부장판사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사법시험(제38회)과 공인회계사시험(제25회)에 합격한 후 삼일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예비 판사로 법복을 입고, 2003년 광주지방법원 근무 당시 파산 사건을 맡게 됐다. 2014년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하며 수석부에서 파산부 독립을 끌어낸 인물이다.
전 부장판사는 기업회생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의 역할에 대해 ‘신속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법원이 회생 사건을 가지고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정상적으로 회생 계획 수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반드시 파산 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회생 사건이 종결되면 변제 계획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기업이 파산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법원으로 넘어와 진행 중인 상황에선 채무자회생법상 반드시 파산 선고를 해야 한다.
특히 기업회생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채 법원에 남아있게 되면 공공기관 입찰이 불가능하고, 건설업의 경우 조합이 신뢰를 담보해주는 재정보증서도 발급해줄 수 없게 된다. 영업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 부장판사는 “미국과 일본처럼 신속한 종결이 필요한데 우리는 채무를 일부 갚아야 하고, 변제 계획에 대한 수행 가능성이라는 요건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늦어진다”면서 “이는 법에 따른 강행규정이 아니므로 재판부 의지에 따라 (한국도) 조기 종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접수되는 기업회생 사건이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다른 양상이라고 했다. 당시는 기업의 부실한 재무상태가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현재와 미래를 담보할 ‘사업성’이 없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 부장판사는 “재무적인 문제가 있는 기업들은 IMF,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이는 빚을 덜어주면 살아나갈 수 있다는 뜻”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사업성이 핵심이고 결국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간이회생제도 부채 한도 상향 조정은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앞서 법무부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 등을 위해 간이회생제도 부채 한도를 3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상향하는 채무자회생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마련했다.
전 부장판사는 "간이회생절차는 사실상 비용 외에는 일반적인 회생절차와 똑같이 진행된다"며 "부채 한도를 높여 법원의 문턱을 낮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가까지 기간을 제한하거나 변제 기간을 짧게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통상적인 회생절차에서 조사보고서는 50~100쪽가량인데 간이조사보고서도 이와 똑같다”며 “보고서 매수를 제한해 필요한 내용만 적절하게 들어가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얘기다. 전 부장판사가 2017년 수원지법에서 회생절차 조사보고서를 10쪽 이내로 줄이자 2016년 17건이었던 사건 종결 건수가 47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전 부장판사는 “회생법원의 존재 목적은 신속한 구제에 있다”며 “신속하고 간이하게, 또 적극적인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