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성장통이라 말하는 ‘불평등’의 또다른 이름은 걸림돌

입력 2020-06-15 07:16수정 2020-06-1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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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2부장

소득과 부의 불평등.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의 중요한 관심사의 하나다. 최근 미국 인종차별 시위에서 약탈자들이 활개를 치는 내면에도 ‘불평등의 확대’가 깔렸다. 1964년 필라델피아에서 인종차별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흑인 거주지가 중심이었지만 이번에는 고급 상점이 밀집한 체스트넛·월넛스트리트가 중심이 됐던 점이 이를 말해 준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아우터는 “도시에는 부유한 사람들의 편리함을 위해 저임금 근로자들이 있다”며 “이들은 올봄 도시의 불평등을 부각시킨 (코로나19의) 공중 보건·경제 위기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잔혹한 폭력뿐 아니라 2011년 들불처럼 번졌던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OWS)’ 시위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부의 집중 문제와 기득권의 부패가 스며들어 있다는 얘기다.

불평등과 성장은 어떤 고리를 갖고 있길래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클까. 적잖은 연구들은 불평등이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식재료에 풍미를 더하는 양념과 같지만, 그것이 과하면 재료 본연의 맛을 잃게 한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경제적 불평등 관련 연구로 유명한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던 2012년에 ‘위대한 개츠비 곡선’ 개념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주장을 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밀주와 채권 등으로 갑부가 된다는 내용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곡선은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수록 세대 간 계층 이동성이 작아진다는 것을 보여줬다. 빈부 격차가 큰 나라일수록 가난이 대물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같은 국제기구들도 최근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들 국제기구는 불평등 문제에 지극히 보수적이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최근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불평등 확대를 우려하면서 “더 진보적인 세금 모델도 무기(불평등 완화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서 “이런 조치는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많고 사회보장체계가 불충분한 국가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고, 공공 분야 고용을 확대하고, 기업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가 내놓은 ‘소득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세계적 전망’(2015년)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5년 동안 GDP는 0.08%포인트 감소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에 0.38%포인트 증가했다. 1980년대 이래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낙수효과’ 이론에 사실상 파산 선고를 내린 것으로 의미가 가볍지 않다.

우리나라의 불평등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팔마비율로 본 한국의 소득 불평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0번째(1.44)로 양극화가 심한 편이다. 팔마비율은 소득 상위 10%와 하위 40%의 소득을 비교한 값으로 이 수치가 커질수록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본다.

자산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등이 조사한 ‘2019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순자산 기준으로 상위 20%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10억8517만 원으로 하위 20%(864만 원)의 125.6배에 달해 전년(106.3배)보다 격차가 커졌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 만에 가장 큰 폭인 4.3% 줄었다. 소득 주도 성장 실험 2년 만이다. 서울시민 10명 중 7명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수준을 심각하게 봤다. 그 원인으로는 30.8%가 ‘부동산 가격 상승 대비 임금 인상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최근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대외 여건 악화로 인한 성장률 둔화 압력을 억제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불평등 현상을 이대로 내버려두다간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하면 군소리다. 문재인 정부가 신경 쓰는 소득 불평등 해소마저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게 여권 내 핵심 인사의 용역 보고서 아닌가. 더 늦기 전에 정책의 대전환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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