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상당수는 '실수요 다주택자'…비자발적 매각 과정서 '세입자 전환' 주객전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본인이 보유한 경기 의왕시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동안 마음의 무거움을 주었던 멍에를 내려놓는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의왕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세종시에서 주상복합아파트 분양권을 가진 1주택 1분양권자다. 일찍이 분양권을 매각하려 했으나, 전매 제한에 걸려 입주일만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의왕 아파트를 먼저 매각함에 따라 홍 부총리의 가족은 조만간 셋집을 알아봐야 한다. 다주택자를 벗어나고자 세입자가 되는 아이러니다.
현 정권에서 다주택자는 적이 됐다. 고위공직자는 특히 그렇다. 여론의 눈총에 ‘실수요자’에 해당하는 공직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주택을 매각하고 있다.
2012년부터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옮겨지면서 공무원들은 비자발적으로 세종시로 이주했다. 배우자가 경제활동을 하거나 자녀가 중·고등학생인 경우에는 홀로 이주했다. 현재 중앙행정기관에서 국장급(2급) 이상은 대부분 그랬다. 이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다주택자가 됐다. 가족은 기보유 주택에 두고, 본인은 세종에서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주택에 거주했다. 그런데 2017년부터 다주택자란 이유로 공공의 적으로 몰렸다. 2012년 세종으로 이주한 한 실장급(1급) 공무원은 2018년 가족이 살던 수도권 주택을 매각했다. 지금 이 공무원의 가족은 세입자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배우자가 상속받은 주택 지분 때문에 다주택자가 됐다. 하지만 김 차관도 ‘고위공직자 1주택’ 기조에 따라 배우자의 지분을 그 어머니에게 증여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세청이 안내하는 ‘절세팁’에 따라 충북 청주시 주택을 정리하고 양도차익이 큰 주택(서울 서초구)을 1주택으로 남겨뒀다가 도마에 올랐다. 양도차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서울은 노 실장의 현재 거주지다. 김 차관이나 노 실장 같은 사례는 숱하다. 상속·증여나 가구 내 세대 분리, 근무지 변경 등이 흔한 다주택 사유다. 대부분 다주택자이면서 실수요자다.
하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다주택자가 실제로 투기수요인지,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수인 다주택자를 때림으로써 다수인 무주택자와 1주택자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함 정치게임 같다”며 “실상은 다주택자 중에서도 합산 5억 원이 안 되는 지방이나 시골 주택을 보유한 경우가 많지만, 정부·여당은 모든 다주택자가 강남의 주택을 싹쓸이해 떼돈을 번단 식으로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