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메르세데스-벤츠가 처음으로 수소연료전지차(수소전기차)를 개발했을 무렵인데요.
당시 벤츠는 글로벌 친환경 자동차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친환경차 전략을 펼쳤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첫 번째이자 최적의 장소로 싱가포르가 꼽혔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한국이나 일본처럼 자국에서 차를 생산하지 않으니 텃새가 없었으니까요.
수소전기차의 기본 원리는 전기차와 같습니다. 다만 전기를 충전하는 순수전기차와 달리, 수소전기차는 수소를 주입해 전기를 생성한다는 게 차이점이지요.
전기분해 이후 만들어진 배출물은 순수한 물이 전부이다 보니 대표적인 친환경차로 꼽히고 있습니다.
당시 '다임러 크라이슬러'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은 머플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담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방긋 웃으며 기자에게도 이 물컵을 건넸었지요. 손사래를 치는 것도 모자라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어가며 거부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이라면 모를까 15년 전만 해도 자동차 머플러에서 떨어지는 액체를 선뜻 마실만 한 용기는 없었습니다. 자동차 내연기관에 대한 편견과 수소전기차에 대한 무지함이 가득했으니까요.
그렇게 1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변에서 친환경차를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와 대형마트, 아파트 주차장에도 충전기를 꼽은 전기차가 여럿입니다.
그뿐인가요. 이제 수소전기차도 '수소'에 대한 편견을 성큼 밀어내며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가, 심지어 많은 수소전기차 운전자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요. 바로 ‘고압가스 자동차 운전자 의무교육’입니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제23조)에 따르면 수소를 포함한 고압가스 자동차 운전자는 의무적으로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시행하는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운전자 본인은 물론, 가족, 나아가 대리운전자 역시 이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미이수 운전자는 1회 적발 때 15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적발 횟수가 늘어나면 과태료가 300만 원까지 불어납니다.
수소전기차 운전자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수소전기차를 판매하는 자동차 회사도 이에 대한 고지 없이 차를 판매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현행법상 교육을 이수하지 않는 운전자는 차를 인도받는 순간부터 과태료 부과 대상자가 되는 셈이니까요.
여려 명의 수소전기차 오너들에게 문의해도, 이 차를 판매한 영업사원에게 물어도 이런 법령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반응은 "세상에, 그런게 있었나요" 였습니다.
수소전기차에 대한 차별도 아닙니다. 고압가스 자동차 운전자 안전교육은 한때 LPG 자동차 운전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이야 LPG에 대해 자동차 연료 사용제한 규제가 풀렸지만, 한때는 7인승 이상 다인승 승용차만 LPG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LPG 운전자도 의무교육 대상이었는데요. 보급이 확산하면서 이 규제는 안전관리자와 시공 관련 기술인력 등으로 완화됐습니다.
한때 LPG 자동차처럼, 지금 수소전기차는 고압가스 자동차자로 분류돼 있습니다. 언젠가는 LPG 자동차처럼 규제가 완화될 테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안전교육 이수 의무와 과태료가 존재합니다.
수소전기차 보급을 위해 정부는 갖가지 규제를 걷어내고 있다지만 이 노력은 충전소 확대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이제 한 걸음 물러나 다른쪽으로도 눈을 돌려야할 때입니다,
우리보다 수소전기차 보급대수가 한참이나 모자란 독일과 미국은 이미 수소전기차 셀프 충전소가 존재합니다. 앞으로는 수소충전소의 무인화까지 검토 중입니다.
이웃 나라 일본 역시 ‘고압가스 보안법’이 존재하는데요. 자격을 갖춘 관리자가 있어야 충전할 수 있다는 법령을 개정하고 나섰습니다.
우리도 관련법을 점검하고 실태를 파악한 뒤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합니다. 시작부터 삐걱대며 제 할 일 못 하고 있는 21대 국회 법사위만 정신을 차린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