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월세화 속도도 빨라져… 반전세 비중 최고치
“매년 요맘때면 학군 수요 등으로 전세 거래가 활발했는데 올해는 전세 물건도 없고 거래도 뜸합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높여 부른 호가에도 전세 물건이 나오기만 하면 바로 계약이 됩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H공인중개사)
서울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전세 물건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새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ㆍ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이후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보유세 부담 등으로 전세를 월세로 돌리거나 보증금 인상분을 월세로 받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증금과 월세가 함께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서민들의 주거 환경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8월 1∼30일 서울에서 체결된 아파트 전월세 임대차 계약은 총 6078건으로 집계됐다. 7월(1만1600건)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추가로 신고될 가능성이 있지만 1만 건 미만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역대 최저 기록이다.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임대차 거래가 월 1만 건 아래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전월세 거래가 줄어든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미 예상됐던 현상이라고 말한다. 서울지역의 만성적인 주택 공급 부족과 지난달 말 시행된 새 임대차법 등 전세시장 불안을 야기할 만한 요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송파구 잠실동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전세 물건이 잘 안 나오는 상황에서 임대차법 시행 이후 매물이 더 줄었다”며 “부동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실거주를 결정한 집주인들도 있고, 전세를 구하기 힘든 세입자들이 그냥 가격을 올려주고 그대로 사는 경우도 많아 전세 물건 자체가 많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보유세 인상으로 세금 부담이 커진 것도 집주인들이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선호하는 원인이다. 강남구 대치동 J공인 관계자는 “세금(보유세)이 터무니없이 오르다 보니 이를 채우기 위해 월세로 바꿔 달라는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면서 “당장 수입이 없는 노년층에서는 수십만 원 월세라도 받아서 세금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세의 월세화 현상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8월 서울의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반전세 비중은 14.3%(868건)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7월(10.1%)과 비교하면 4.2%포인트, 6월보다는 4.4%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반전세 비중이 높아지는 사이 순수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월 74.1%에서 지난달 73.1%, 이달 72.7%로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세 보증금과 월세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정보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8㎡형은 지난달 24일 보증금 6억 원 월세 90만 원에 거래됐지만, 이달 20일 보증금 6억 원 월세 140만 원에 거래를 마쳐 월세 50만 원이 올랐다.
강남구 대치삼성아파트 전용 97.35㎡형의 경우 지난달 13일 보증금 7억5000만 원에 월세 130만 원(18층)으로 임대차 계약됐으나 이달 4일엔 보증금 8억5000만 원 월세 140만 원(4층)에 계약서를 썼다. 아파트 층수가 낮은 데도 보증금은 1억 원, 월세는 10만 원이 더 오른 것이다.
강남뿐만이 아니다.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e편한세상 전용 59.79㎡형은 올해 초 보증금 9000만 원, 월세 40만 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이뤄졌으나, 15일 보증금 1억3000만 원, 월세 70만 원에 거래됐다. 7개월여 만에 보증금 4000만 원, 월세 30만 원이 뛰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입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다른 결과가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며 “이처럼 전세의 월세화 속도가 빨라지고 보증금과 월세까지 계속 오르면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