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사용이 중지된 독감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은 26일 현재 324명으로 하루만에 100명이 더 늘었다. 질병관리청은 26일 참고자료를 내고 "조사 대상인 정부 조달 물량을 접종한 경우가 오늘 기준 총 324건으로 보고됐다"면서 "현재 이상반응 발생보고는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정부 조달 물량과 유료 민간 물량을 분리하지 않은 일부 의료기관에서 국가 예방사업 중단을 인지하지 못한 채 무료 백신 접종을 진행한 결과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상온 노출 백신의 안전성 여부가 아직 확인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 국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상온 노출 백신의 효력을 확인하는 항원단백질 함량 시험, 안전성을 확인하는 발열반응 시험 등 품질 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나 검사 기간은 2주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상온 노출 백신 문제가 첫 확인된 시점인 21일 밤인 만큼 아무리 빨라도 추석 연휴는 지나야 검사 결과가 나온다.
더욱이 일각에서는 소규모 샘플 검사만으로는 충분히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1차 신고에서 상온노출이 의심되는 5개 지역의 백신 5개 로트의 샘플을 취합해 식약처로 보냈다. 이는 750도즈로 문제가 된 백신 물량 500만 도즈의 0.015% 규모에 그친다. 이와 관련해 질병청은 콜드체인(냉장 유통)에 대한 조사·분석을 거쳐 추가로 위험도에 노출된 백신 물량을 발견하면 2차 검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상온 노출 백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세 가지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배송 차량에 부착된 자동온도기록장치로 콜드체인의 실태를 파악하고 식약처에서 샘플 백신의 품질 검사를 하는 한편, 적정 온도가 유지되지 않는 가혹 조건에서 품질 평가도 실시한다. 최종적으로 폐기할 백신은 세 조사를 종합한 후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결정할 예정이다.
설사 공장을 24시간 가동으로 전환한다 해도 백신을 적기에 공급할 수 없다.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등 생산 과정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을 단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충분한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을 24시간 돌릴 수도 없을뿐더러 24시간 돌려도 생산 기간을 줄일 수 없다"면서 "독감 백신의 생산 과정을 알고 있다면 무턱대고 빨리 만들어내란 요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감 백신의 추가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칫 '백신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유료 접종으로 배정된 물량을 국가예방접종(NIP)용으로 전환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전체 백신 물량의 70%에 달하는 2950만 명 분이 NIP로 배정됐다. 만일 추가로 물량을 전환하면 NIP에 해당하지 않는 19~62세의 접종권이 침해된다.
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약독화해 독성을 제거한 생백신과 배양한 바이러스·세균을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비활성화시킨 사백신으로 나뉜다. 사백신인 독감 백신은 상온 노출에서 생백신보다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신 제조사 관계자는 "자체 실험에서 독감 백신을 25도의 상온에 노출했을 때 최대 6개월까지는 품질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국도 제조사들의 이 같은 사전 연구 결과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온 노출 백신이라도 조사에서 문제가 없으면 접종을 차례로 재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