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 코로나19로 붕괴된 ‘신자유주의’ 신화…‘효율성’ 내세운 GVC 붕괴

입력 2020-10-0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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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부익부 빈익빈 심화…세계 경제 질서 재편 대비해야

▲중국 국유 제약회사 시노팜(중국 의약 집단) 계열의 중국생물(CNBG)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샘플이 베이징에서 열리는 무역박람회에서 코로나19 3D 모형 옆에 전시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 (베이징/AP연합뉴스)
#2011년 태국에서 발생한 홍수로 전 세계 컴퓨터 업계는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 태국은 전 세계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공급량의 40%를 생산하고 있었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국내 기업을 비롯해 글로벌 기업인 인텔도 제조사들이 PC 생산량을 줄이면서 타격을 입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뒤 올해 2월 현대·기아차는 공장을 ‘셧다운(일시폐쇄)’ 했다.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네스(전선뭉치) 공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는 유럽에서 엔진 부품을 제대로 수급받지 못해 공장 라인을 멈췄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경제 성장을 견인하던 ‘신자유주의’ 신화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효율성을 내세워 30~40년 동안 국제적 분업을 추구해왔다. 낮은 인건비를 시작으로 소재와 부품, 조립, 유통에서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GVC(글로벌 밸류 체인)를 구축했다.

한국의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건비가 싼 중국에 투자했다가 인건비가 높아지자 대신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이미 삼성전자와 엘지전자가 베트남에, 한화에너지가 말레이시아에, 롯데케미칼과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러한 공급사슬이 하나둘 끊어지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여 있었던 만큼 그 충격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이러한 공급사슬의 연결고리는 더욱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로빈 니블렛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제 세계는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세계화’라는 신념을 다시 갖기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GVC의 가장 핵심 국가로 ‘세계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이 멈추면서 충격은 더욱 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중국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6.9%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국 의존도도 수출 25.1%, 수입 21.3%를 기록했다. GVC 구조상으로도 대중 수출 중 중간재 비중은 79.5%에 달했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은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세계 경제 질서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다”며 “효율성에 기반을 둬 세계화와 국제적 분업으로 구축된 GVC가 지역, 국가 차원으로 축소·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가 확산하자 3M과 GM 등 미국 기업에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해 수출 제한을 명령했다. 자국 내 장비 제공을 우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으로의 이민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미국을 선두로 경제 지역 블록화가 진행될 경우 국가 간 무역장벽이 부활하고, 세계화를 주도했던 신자유주의는 퇴조될 가능성이 커졌다. 장 폴 로드리그 미국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세계 경제가 생필품은 국산화하고 첨단제품은 국제화를 유지하는 ‘이중구조’로 고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로 만들어진 GVC를 통해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정작 시장은 글로벌화됐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은 그렇지 못했다.

20년 전 독일 저널리스트 한스 페터 마르틴은 그의 저서 ‘세계화의 덫’에서 ‘서구식 세계화의 본질은 상위 20%가 세계 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머지 80%는 빈곤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최근 새롭게 출간한 ‘게임 오버’에서는 그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이제 대재앙’이라고까지 경고했다.

효율성을 높이는 대신 위험부담도 약자들이 떠안아 왔다. 이 때문에 GVC가 약해지면 저비용 구조 속에 있던 약자들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가 위축되면 이 같은 분배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복지도 빈약해질 우려가 더욱 커졌다.

대표적인 분야가 노동력이다. 코로나19로 높아진 불확실성에 따라 기업 경영 활동은 위축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존재했던 값싼 노동자들이 시장 원리에 따라 가장 먼저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줄어든 복지 혜택에서도 소외되면서 코로나19의 대량 확산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기본 생활, 기초 건강을 보호하는 복지의 중요성도 대두됐다. 결국 ‘경제’도 중요하지만 기본 생활과 건강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등한시됐던 생태, 건강, 안전 문제가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면서 기존의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 문제가 본질적인 가치로 대두될 것”이라며 “기존의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중심의 통합이 가져온 한계에 관한 성찰이 이뤄질 것이고 방역 중심이나 안전을 모색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대두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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