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전셋값에… 임차인ㆍ임대인 '갑을(甲乙)' 재역전

입력 2020-10-15 05:40수정 2020-10-1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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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아진 집주인 vs 눈치보는 세입자…전세난이 바꾼 신풍속

세입자 "전셋값 5% 이상 올리고 자동연장 안될까요?"
집주인 "갱신권 쓰고 2년 뒤 방 빼요"

서울 송파구 가락동 아파트를 보유한 A씨는 한동안 속앓이를 했다. 세입자가 새 전셋집을 구하기 어렵다며 전세 만기를 두 달만 연장시켜 달라고 부탁해서다. A씨는 세입자 사정을 생각해 부탁을 들어주려 했지만 주변 설득에 마음을 돌렸다.

주변에선 그 같은 계약 연장이 묵시적 계약 갱신(자동 계약 연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현행 주택 임대차보호법은 집주인이 임대차계약 만기 한 달 전까지 갱신 거부나 계약조건 변경 등을 통보하지 않으면 묵시적으로 전과 같은 조건으로 재계약이 된 것으로 인정한다. 묵시적 갱신으로 재계약을 맺은 세입자는 다음 번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 전세계약을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A씨의 재테크는 큰 타격을 입는다. A씨가 세 준 집은 재건축을 추진 중이여서 A씨가 새 아파트 입주권을 얻으려면 2년 거주기간을 채워야 해서다.

집주인들이 까칠해졌다. 의도치 않게 전세 기간이 연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임대 계약을 깐깐하게 내세운다. 전세 물건 부족 속에 가격이 치솟으면서 집주인들의 콧대가 높아진 것이다.

다급해진 건 세입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세 사는 B씨는 아예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전세계약을 연장하면 전셋값 인상 부담도 최대 5%까지 줄어들지만 B씨는 집주인과 신규 계약 형태로 계약을 맺고 전셋값도 5%보다 더 많이 올려줬다. 계약갱신청구권이 1회로 제한돼 있어서 그 기회를 아끼기 위해서다. B씨는 전셋값을 적당히 올려주고 4년 간 주거 안정을 누리는 게 2년 후 '전세 난민'이 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전셋값폭등이 계속될 거란 판단에서다.

B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집주인들은 기존 세입자에게 오히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권하고 있다. 현재 계약을 갱신하면 2년 동안만 전셋값 인상을 제약받지만 새로 들어온 세입자가 2년 후 갱신청구권을 쓰면 4년 동안 전셋집 유동성이 묶이기 때문이다. 2년 후 전셋값이 지금 시세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른다고 생각하면 계약 갱신으로 시세(전셋값)를 갱신하는 것이 낫다.

서울 전세난, 5년 만에 '최악'
전세 품귀현상 극심… 전셋값도 '껑충'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임대차법 개정 후 전세 품귀현상이 심해지고 가격도 뛰고 있어서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하는 주간 전세수급지수는 지난주 192.0까지 올랐다. 2015년 이후 최고치다. 전세수급지수는 상한인 200에 가까울 수록 전세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수급 불균형이 계속되는 임대인(집주인) 우위시장에서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7월 31일 개정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ㆍ전월세상한제)이 시행된 후로 수도권 아파트 전세 물건은 14일 기준 70%(7만7513건→2만3523건) 줄었다. 서울에선 3만8427건이던 전세 물건이 9561건으로 75% 감소했다.

가위바위보ㆍ제비뽑기로 세입자 정하기까지

▲주택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이후 전세시장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전세 매물을 확인하기 예비 세입자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최대 피해자는 새로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들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선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수요자 9팀이 줄을 서서 집을 둘러보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이 중 전세 계약자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제비를 뽑아 정했다.

그나마 제비를 뽑는 것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시간 여유가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기회다. 서울이나 경기도 인기 지역에선 오전에 전세 물건이 나와도 저녁이면 세입자를 찾으면서 매물이 금세 사라져버린다는 전세 수요자들의 하소연이다. 일부 공인중개사에선 고객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전셋집이 나오면 순서대로 집을 구경할 '기회'를 주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임대인 우위시장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전세난을 해결하려면 물건이 꾸준히 나와줘야 하는데 공급을 당기간에 늘리기가 쉽지 않다"며 "내년 봄 이사철까지 전세난이 이어질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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