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통일 연방국가’ 가능할 수 있다
동독 5개 주가 서독연방에 편입하는 형식으로 흡수 통일
기본법 107조, 부유한 주가 가난한 주 돕는 재정균등화법
후유증 있었지만 성공적인 統獨 30년
지난 3일은 독일 통일 30주년이었다. 1989년 11월 9일 자정쯤에 28년간 동서 베를린을 갈라놓았던 베를린 장벽이 갑자기 붕괴됐다. 이후 채 11개월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통일됐다. 부유한 자유민주주의 국가 서독이 공산주의 독재국가 동독을 흡수통일했다. 아직도 동·서독 시민 간 마음의 장벽은 남아 있지만 독일 통일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구동독 2000만여 명의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유를 누리며 산다. 통일 독일은 유럽의 맹주로 유럽통합을 주도해 왔고,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자유무역을 수호하는 서방의 주요 국가이다.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우리에게 독일 통일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안겨 준다. 긴박했던 통일 과정이나 통일 후유증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반면에 통일 독일이 연방국가를 유지해 왔음은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통일 한국도 연방국가가 될 수 있을까? 먼 훗날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한번 상상해 보자.
연방정부·주정부 동등한 조세주권
서독의 헌법(기본법)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간의 권한을 명시한다. 원래는 주정부의 권한이지만 합의에 따라 인공적인 연방정부를 만들었기에 여기에 일부 권한을 이양한 셈이다. 기본법은 28조, 30조 등 몇 개 조항에 걸쳐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권한 및 조세 수입의 배분을 규정했다. 교육과 환경, 이민 등은 주정부의 고유한 정책 권한이고 이를 위해 주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부가가치세 가운데 상당 비율을 세입으로 쓸 수 있다. 연방정부가 주정부에 특정 비율로 이 세금을 교부해 주는 게 아니라 모든 세금을 연방과 주정부 간에 배분한다고 명시하여 주정부에 거의 동등한 조세 주권을 부여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세 명목으로 재정을 지원해 주는 우리와는 정반대이다. 이처럼 연방주의는 각각의 정치단위(주 및 그 이하의 지자체 등)가 독립적임을 인정한다. 대표적인 연방국가 미국에서도 헌법 1조와 수정헌법 10조에 유사한 조항이 있다.
통일 독일은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이다. 구동독에 속했던 브란덴부르크와 작센 등 5개주가 통일 당시 서독에 편입됐다. 흡수통일이었기에 구동독이 서독의 연방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 당시 서독 기본법 23조는 “이 조항이 서독에만 적용되지만 독일의 다른 지역(동독을 의미)도 서독으로 편입되면 적용된다”고 규정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염두에 둔 조항을 두었고 이에 따라 개헌 없이도 통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통일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89년 11월 말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 장기적으로 연방국가로 가는 계획을 발표했다. 20년 가까이 동·서독이 교류를 계속해 왔음에도 워낙 이질성이 컸다. 따라서 동독의 존속을 전제로 동·서독 각 주가 교류를 확대하면서 협력을 제도화해 점진적으로 연방국가로 가자는 제안이다. 물론 이듬해 동독 최초로 실시된 자유선거에서 급속한 흡수통일을 요구한 정당이 압승을 거둬 이 계획은 사라지고 독일은 흡수통일이 되었다.
권력 분산…연립정부가 게임의 규칙
동독 시민들이 서독 동포처럼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다. 물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대로 구동독에도 도입되어 어느 한 정당이 과반을 확보하는 게 매우 어렵게 됐다. 서독처럼 거대정당과 소수정당이 연립정부(연정)를 구성해 정치하는 타협정치가 구동독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기본법 107조에 따라 가난한 주를 부유한 주가 지원해 주는 재정균등화법도 그대로 적용된다. 해마다 씨름할 필요도 없이 부자 주가 가난한 주를 도와주는 게 의무이다.
급속한 흡수통일 땐 중앙집권 유지 가능성 커
분단을 적절하게 관리해 평화를 유지하면서 분단을 극복하려는 게 우리의 통일정책이다. 독일처럼 급속한 흡수통일을 가정한다면 지금처럼 고도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부유한 우리가 아주 가난한 북한을 떠안는 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점진적인 통일의 경우 연방국가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통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게 점진적인 통일 방안이다. 북한이 체제의 위협을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혁정책을 도입하고 우리와의 협력을 제도화해서 교류가 굳건하게 계속된다. 장기간 교류가 지속되면서 경제적 격차와 문화적 이질성도 줄어들어 한 국가로의 통일 방안이 논의될 것이다.
이때 북한의 지도층은 연방국가로의 통일을 원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중앙집권적 체제 ‘서울 공화국’은 북한을 이등 지역, 북한 주민을 장기간 이등 시민으로 머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통일의 조건으로 독일식의 연방국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수십 년 후에 일어날 일을 지금 예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연방국가 통일안이 그때 치러질 총선이나 대선에서 승리를 보장해 준다는 승산이 있다면 채택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북한 주민에게도 동등한 정치적·사회적 제권리를 좀 더 확실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게 연방국가라는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전제돼야 한다.
통일의 창 열릴 때, 연방국가 통일 한국 될 수도
몇 년 전 독일 통일과 우리의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학회에서 통일 한국의 연방국가 가능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몇몇 참석자들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연방국가가 통일이 된다고 출범할 수 있겠는가, 너무 북한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했다. 제도는 정착되면 경로의존성 때문에 바꾸기가 아주 어렵다. 하지만 통일의 순간처럼 중대한 분기점에서 기존 제도를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 주요 이해당사자들의 역학관계와 협상, 정치구조가 제도를 바꾸는 원동력이다. 통일의 창이 열릴 때가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행위자와 구조가 서로 얽혀서 역사를 만들어낸다. 우리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연방국가이지만 역사적 상황이 크게 바뀌고 주요 정책결정자들, 그리고 유권자가 원한다면 제도 변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언제일지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때를 차분하게 대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