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주기 따라 할인율 달라져…대대적 할인에 환호했다가 구형차 사면 낭패
기아차 스포티지를 마음에 담아뒀던 직장인 A씨. 그녀가 흥분된 목소리로 견적서를 들고 달려왔다.
영업소에 들러 이런저런 혜택을 뽑아보니 할인 폭이 300만 원 넘게 나왔다고 했다.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기세였다.
먼저 그녀에게 지금 당장 차가 필요한지 물었다. 그리고 용도는 무엇이며 예상되는 주행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되물었다.
역세권에 거주하는 그녀는 출퇴근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주말 ‘솔로 캠핑’용으로 적당한 SUV를 고르는 중이었다. 그녀가 내밀었던 견적서를 조용히 되돌려주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내년 초, 기아차는 스포티지 신차를 내놓는다. 5세대 완전변경 모델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모델의 엔진과 변속기 대부분을 유지하는 반면, 겉모습을 화끈하게 바꾼다. 내장재를 포함한 다양한 신기술이 차에 담길 예정이다.
이를 눈치챈 똑똑한 가망 고객들은 이미 대기수요로 이동했다. 최근 스포티지 판매량이 하락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자동차 회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당신에게 신차를 할인해주지는 않는다. 후속 모델 출시를 앞두고 스포티지 판매가 하락하자 기아차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대적인 할인을 선보이는 셈이다.
이처럼 완성차 제조사들은 일정 기간을 주기로 신차를 내놓는다. 이른바 ‘풀모델 체인지(세대변경)’다. 스포티지는 2010년에 3세대가, 2015년에 4세대를 공개했다. 5세대가 등장할 때가 된 셈이다.
자동차를 새로 개발해 내놓으면 이른바 ‘신차효과’에 힘입어 판매가 치솟는다. 관건은 이런 인기가 얼마나 지속하느냐다. 반짝인기에 그치는 차가 있지만, 몇 년이 지나도 꾸준히 인기를 끄는 차도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꾸준히 인기를 끄는 차가 당연히 유리하다. 이를 위해 경쟁력은 필수다. 제품 교체 주기, 이른바 '라이프 사이클'이 단축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신차 교체 주기는 주요 시장의 경쟁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국산 준중형차의 경우 북미시장이 주요 무대다. 일본 경쟁사와 맞서야 하는 만큼, 나아가 상대적으로 젊은 층을 겨냥해야 하는 만큼 발 빠르게 새로운 유행과 흐름을 신차에 도입해야 한다. 5년마다 신차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실제로 현대차 엘란트라(1990년)→아반떼 J2(1995년)→아반떼 XD(2000년)→아반떼 HD(2005년)→아반떼 MD(2010년)→아반떼 AD(2015년)→아반떼 CN7(2020년) 순으로 등장했다.
이보다 경쟁이 덜 치열한 쏘나타급의 중형차는 제품 교체 주기가 이보다 소폭 길다. 현대차 중형 SUV 싼타페는 7년마다 신차를 내놓기도 한다.
결국, 지금 현재 팔리는 차가 언제 출시됐는지 알아보면 다음 신차 출시 시점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다.
1990년대 초, 유럽과 일본 차의 세대 변경은 매 7년이었다. 7년마다 신차를 내놓고 그 중간 기점, 예컨대 약 3년 반이 지날 무렵 소폭의 변화를 준 이른바 ‘마이너 체인지’를 내놓았다.
그리고 매년 디자인 일부를 바꾼 '연식 변경 모델'을 출시하고는 했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세대 변경 주기가 4~5년으로 축소됐다. 발 빠르게 최신 유행을 신차에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 경쟁이 거세졌고, 신차 개발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변경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모델 교체 주기가 짧아지면서 이른바 마이너 체인지가 사라졌다.
라이프 사이클 중간 기점에서 앞뒤 모습과 동력장치에 커다란 변화를 주고 이를 ‘페이스 리프트’라고 부른다.
나아가 페이스 리프트의 변화 폭도 확대하는 추세다. 소폭의 디자인 변화에 머물렀던 이전과 달리 전혀 다른 신차로 여겨질 만큼, 화끈하게 변화하는 추세다.
신차 출시 시점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단순하게 신차 구매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중고차를 살 때도 알아놓으면 유리하다. 특히 수입차라면 더욱 그렇다.
중고 자동차의 시세는 수요와 공급이 맞물려 형성된다. 3년 또는 6년 주기의 신차 할부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자연스레 ‘잔존가치’가 형성돼 있기도 하다.
신차 가격을 기준으로 3년 뒤 잔존가치가 50% 수준이다. 리스나 할부 프로그램의 조건을 잘 살펴보면 ‘3년 뒤 잔존가치 50% 보장’이라는 문구가 많다. 할부금융사에서 3년 뒤 차 가격의 50%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결국, 3년을 타고도 차 가격이 신차의 50%를 넘는다면 인기 차, 반대로 50% 이하로 떨어졌다면 그만큼 비인기 차라고 보면 된다.
중고차 시장에서 수입차를 고를 때에도 신차 출시 시점을 알아두는 게 유리하다.
예컨대 신차 가격 5000만 원짜리 수입차가 3년 뒤 중고차 시장에 나오면 2500만 원 안팎에서 시세가 결정된다. 다만 해당 차종의 모델 변경 시점, 나아가 후속 모델의 출시 시점도 따져봐야 한다.
앞서 신차를 샀던 오너가 단종 직전에 이미 1000만 원 넘게 할인을 받았다면, 그 차를 중고차로 살 때는 그만큼을 덜어내고 잔존가치를 산정하는 게 맞다. 이를 모르고 있다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