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효진 사회경제부장
국정감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한 검찰 간부가 사표를 내며 던진 이 한마디에는 많은 뜻이 담겼다.
후배 검사들은 안타까워했다. 일 잘하던 선배가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한 충격도 컸다. 그가 물러난 후에도 후배 검사들은 한동안 그의 ‘사직 인사’를 곱씹었다.
정작 당사자들은 별말이 없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중대한 시기에 사의를 표명하는 상황에 이르게 돼 유감”이라고 짤막한 메시지를 냈다.
최근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검찰엔 온통 정치만 보인다. 시쳇말로 그 검찰 간부의 ‘뼈 때리는 한 마디’가 꼭 들어맞는다.
검찰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관계를 지켜보고 있으면 거북하다. 마치 자신의 검찰로 길들이기를 하려는 듯하다.
공격은 주로 추 장관이 한다. 그의 말대로 장관은 검찰총장의 상급자이다 보니 지휘 체계상 명령하달방식이다.
검찰에 정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한 건 작년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다. 아니 그보다 두 달 앞선 7월 문재인 대통령이 파격적으로 윤 총장을 검찰 수장 자리에 올린 게 출발점이다.
윤 총장은 취임 후 첫 번째 인사에서 특수통 검사들을 대검찰청으로 대거 불러들였다.(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하지만 검찰총장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다. 검찰청법 제34조)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도 이때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 이동했다.
측근들로 진용을 갖춘 윤 총장이 조 전 장관 일가 의혹 사건에 손을 대면서 검찰은 정파성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정치가 검찰을 엄습하는 순간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이후 조 전 장관의 ‘한 달 천하’는 자신은 물론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동생, 사촌 동생이 모두 기소되며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올해 1월 추 장관의 등장은 후일 불어닥칠 폭풍우의 신호였다. '진짜가 나타났다'는 시각과 함께 여권과 검찰의 불협화음을 끝내고 최대 과제인 검찰 개혁의 민주적 완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만큼 추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느 때와 달랐다.
그러나 추 장관은 첫 번째 인사부터 윤 총장과 각을 세웠다. 추 장관은 윤 총장 측근들부터 잘라냈다.
추 장관은 인사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으나 윤 총장이 거절했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미 다 짜놓고 통보한 후 의견을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추가로 이뤄진 몇 차례 인사에서 이런 논쟁은 반복됐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추 장관은 6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증언 강요 강압수사 의혹에 대한 감찰 지시를 놓고 “지시 절반을 잘라 먹었다”고 윤 총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7월에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 장관은 윤 총장이 사건 당사자인 한 검사장을 감싸려 한다고 의심했다.
사건의 본질을 떠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지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으나 윤 총장은 버텼다.
석 달 후 추 장관은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라임 펀드 사기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정치인·검사 로비 의혹을 폭로한 ‘옥중 자필 입장문’이 방아쇠가 됐다. 추 장관은 이에 더해 윤 총장 가족 비리 의혹 사건을 수사지휘에 포함시켰다.
전례 없던 두 번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충격이었다. 형사 재판 피고인의 편지 내용을 근거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정당성 논란도 일었다.
살얼음판을 걸었던 두 사람은 결국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정면충돌했다. 윤 총장은 “총장은 법무부 장관 부하가 아니다”라며 거친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자 추 장관은 전방위 감찰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총장이 정치 중립성을 훼손했다고도 했다. "윤 총장이 특활비를 주머닛돈처럼 사용한다"며 의혹도 제기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 양상을 보고 있으면 정치 축소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ㆍ야가 양팔을 걷어붙이고 가세하면서 더욱 명확해졌다. 국민은 둘로 갈라졌다.
국민의 검찰, 검찰 개혁은 구호에 그친 지 오래다. 거창한 싸움인 듯 보이지만 하찮은 권력 다툼에 불과하다. 지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정치에 뒤덮인 검찰, 부조화가 부른 참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