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프(Scoupe)는 현대차가 1990년 내놓은 2도어 쿠페다.
양산을 앞두고 도쿄모터쇼에 깜짝 공개한 콘셉트카는 '엑셀 SLC'였다. 민망하게도 SLC(Sports Looking Car)는 “스포츠카처럼 보인다”를 의미했다. 스스로 "스포츠카는 아닌데…"를 고백한 셈이다.
다행히 양산형은 사정이 달랐다. 차명도 스포츠 쿠페를 상징하며 ‘스쿠프’로 정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엑셀과 거리를 두겠다는 전략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뒤 도어가 없는 세단형 쿠페는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른바 ‘꼰대’는 존재한다.
그 시절 어른들은 “애들이나 타는 차”라며 스쿠프를 폄훼했다. 반대로 수많은 젊은이는 가슴 한쪽에 스쿠프를 '드림카'로 담아놓고 살았다. 기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95년. 21살의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 심장을 방망이질하던 스쿠프를 마침내 거머쥐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고, 막노동 현장에서 힘겹게 방학을 보낸 대가였다.
당시에도 ‘대학생의 자가용 등교’는 사회 문제였다. 남들의 눈을 피해 캠퍼스 한쪽에 차를 숨기고 내릴 때마다 뒤통수는 따가웠다. 그래도 스쿠프를 탄다는 사실에 가슴은 늘 뜨거웠다.
따져보면 스쿠프는 현대차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 못잖게 여러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다. 국산차 최초의 △2도어 쿠페 △최초의 4기통 12밸브 엔진 △최초로 제로백 10초 돌파(스쿠프 터보) △최초의 시속 200㎞ 돌파 등이 스쿠프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스쿠프를 다시 시승했다. 눈앞에 다가온 스쿠프는 예전 감성을 퐁퐁 뿜어냈다.
데뷔 30년이 지났지만 묵직한 도어 느낌은 예전 그대로다. 2도어 쿠페인 덕에 여느 세단보다 도어 크기가 넉넉했던 덕이다.
보닛 아래 달린 H 엠블럼은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 무렵 현대차가 모두 이랬다. 요즘이야 엠블럼 크기를 마음껏 키울 만큼 현대차의 자신감도 커졌다.
실내에 들어 앉아보면 그 시절 현대차가 얼마나 과감했는지도 엿볼 수 있다.
스포츠카는 아니었으나 스포츠카를 겨냥한 다양한 시도가 구석구석 숨어있다. 스포츠 성이 다분한 3스포크 타입의 운전대, 짧고 뭉툭한 수동변속기 레버, 계기판을 가득 채운 커다란 속도계, 원형 다이얼 등이 스포츠카의 DNA였다.
그 시절 스쿠프는 고급 세단 옆에 세워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커다란 도어를 열고 내리는 오너는 차를 아는 진짜 멋쟁이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스쿠프가 등장한 지 30년이 됐다.
현대차 고성능 스포츠카의 ‘맥’은 티뷰론과 투스카니로 이어졌고 제네시스(BH) 쿠페가 첫 뒷바퀴 굴림 쿠페로 이름을 남겼다. 이제 다음 세대의 역사는 내년에 등장할 제네시스 G70 기반의 2도어 쿠페가 쓰게 된다.
자동차 회사의 '헤리티지'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과거를 추억하고, 오늘을 바라볼 수 있다면, 자동차와 자동차 산업은 문화유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현대차의 고성능 헤리티지가 시작했던 1990년. "그때, 그때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