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적으로 번지는 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 11만 가구를 끌어모아 공급하는 긴급 처방에 나섰지만 시장에선 오히려 역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대책 내용이 수요 반영을 제대로 못해 전세난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전세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값)가 더 높아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대흥동 신촌그랑자이 아파트 전용면적 59㎡ 전세 호가는 기존에 8억 원이었지만 지난 21일 5000만 원이 더 뛰면서 현재 8억5000만 원에 나와 있다. 전세 호가가 3억 원이었던 노원구 상계주공14단지 전용 71㎡형 전세 매물은 지난 19일 2000만 원 더 뛰었다. 중랑구 면목동 쌍용더플래티넘용마산 전용 75㎡도 6억5000만 원이었던 전세 매물이 지난 20일 5000만 원 더 올랐다.
마포구 대흥동 A공인 측은 "이번 전세대책에 획기적인 방안이 없고, 3인 이상 가족 단위가 살 수 있는 집은 더 없다"며 "대책이 나온 뒤 전세 호가를 더 높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전세 대책은 공공임대를 최대한 빨리 공급하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시장에선 전세 물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세형 주택을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점은 시기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공급 방식이다. 상가, 오피스텔, 호텔을 활용하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신축매입약정 방식 등이 동원됐다. 그러나 이번 전세난의 핵심인 아파트가 아닌 비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 지금의 전세난을 진화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대책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뾰족한 단기 전세대책이 별로 없다”고 말한 뒤 장고 끝에 나왔다. 이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의미) 대책 이후 정부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을 카드가 더이상 없다는 의미다.
서진형 대한부동한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세입자들은 나라에서 자신의 임차권으로 보호해줄 것이라 믿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입주물량 감, 이주 수요 등 전세시장 불안 요소는 산적한데 더이상 나올 대책이 없어 집주인들은 호가를 더 높이는 전략을 펴고, 임차인들은 불안 심리에 매매시장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시장이 전반적으로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이번 대책이 전세시장을 진화하기는 커녕 전세·매매가격을 모두 끌어올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주 전국 아파트 값은 0.25% 올랐다. 한국감정원 통계 작성 이후 8년 반 만에 최고 수치다. 임대차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에 서울과 수도권의 전세 품귀로 전셋값이 크게 뛰면서 전세 수요 일부가 중저가 매매시장으로 진입해 집값을 밀어 올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세난 역시 전혀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이 기간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5% 오르며 73주 연속 상승했고, 수도권은 0.26%로 상승폭을 키웠다.
송파구 잠실 B공인 측은 "전세시장 신규 세입자나 재계약을 못한 세입자들이 빌라로 옮겨가면서 빌라 시세까지 오르는데 정부가 매입임대 공급을 위해 집을 사들이기 시작하면 집값은 더 뛸 것"이라며 "매입임대로 집을 판 매도자금은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세시장이 진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더 강력한 규제책을 꺼낼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 교수는 "더이상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전세난이 계속되면 계약기간을 3+3으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임차보증금 상한율을 5%에서 3%로 내려 규제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