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시절 여성정책 적극 펼쳐
성평등 사회처럼 보이는 건 '착시'
금융권 여성임원 비율 5.2% 그쳐
임원할당ㆍ임금공시로 격차 좁혀야
‘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국정감사에서 ‘여성’에 집중한 의원이 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정무위원회에 소속된 그는 국감장에서 때 금융권 성별 차이를 한눈에 보여주는 남녀 임금과 임원 비율을 공개해 주목 받았다.
3일 이투데이가 만난 민 의원은 자신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다. 사회학도로서 인류의 역사를 공부한 덕분이다. 대안의 중요성을 아는 그는 차이를 지적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사회학을 연구하며 인류 역사에서 여성 차별은 편재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민 의원은 ‘여성 차별’이 인류의 과제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문제였고 이게 저한테 예민하게 다가왔을 뿐”이라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으로 활동한 민 의원은 본격적으로 여성을 위한 지원책을 폈다. 그는 비장애 여성들보다 임신ㆍ출산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지역 장애인 임산부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출산 비용 지원 사업을 진행했다.
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 능력 시험 자격증 준비반 과정, 컴퓨터 활용 자격증 준비반 과정, 다문화 이해 교실 강사 양성 과정, 모유 수유 도우미 지원 과정 등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 결과 광산구는 광주시가 주최하는 여성 정책 평가에서 최우수기관에 선정됐다. 민 의원은 당시를 회상하며 “행정기관의 장(구청장)이 됐으니 제가 뭔가를 할 기회가 생겨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청장으로 있으면서 구청 내부 인사도 적극적으로 들여다봤다. 민 의원은 “그전까진 머릿속에 있던 여성 차별과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착취가 그때 실감 났다”고 말했다. 고위급의 행정 공무원들은 남자 직원의 수가 우세했다는 뜻에서다. 민 의원은 “인사차별은 물론, 여성은 동등한 기회도 없었다”며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불리한 측면에 놓여있다는 걸 절감했다”고 밝혔다.
금녀의 공간이라고 일컬어지는 금융권. 이곳에서의 여성 차별은 더욱 만연하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이 취임하면서 2020년에서야 민간 은행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등장한 게 대표적이다. 민 의원은 보수적인 금융권의 현상을 조직적 특성으로 봤다.
민 의원이 8개 금융권 116개 금융사에서 받은 ‘2019년 임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금융사 임원 1630명 중 남성 임원은 1544명, 여성 임원은 86명이다. 금융사 임원 중 여성은 5.2%에 그친 것이다. 임금에서도 차이가 났다. 금융권 전체 남성 임원의 평균 임금은 2억1900만 원인 반면 여성은 1억2000만 원이었다. 성에 따라 임금이 1.82배 벌어진 것이다.
이런 차이는 금융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기준 한국산업은행 정규직 남성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2200만 원으로 여성 직원(8100만 원)보다 1.5배 많았다. 예금보험공사는 남성이 여성보다 1.45배, 한국주택금융공사는 1.43배, 한국예탁결제원은 1.37배 많았다.
그는 “금융기관은 자본주의 사회의 첨병”이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을 다루는 건 여성의 몫으로 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대면 서비스는 여성을 배치하고 실질적인 거래는 남성이 해왔다”며 “차별적인 조직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 강도도 불평등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민 의원은 “금융이 글로벌화 되며 밤낮없이 일해야 하니 금융계 노동 강도가 상당하다”며 “차별적인 조직 문화와 금융 특성의 결합으로 보수적인 금융이 탄생했다”고 했다.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성은 가정과 노동 강도가 센 일자리를 동시에 지키기는 힘들다는 뜻이 녹아있다.
구청장 시절 민 의원은 ‘같은 조건이면 여성에게 기회를’이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여성이 더 성과를 낸다는 이유에서다. 민 의원은 “경험해보니 여성이 더 성실하고 부조리에 예민하다”며 “조직에 대한 여성들의 충성심과 의리는 뛰어나다”고 했다. 동일한 조건이면 여성이 더 성과를 낸다는 것도 이런 가치들 때문이다. 여성에게 열린 사고를 하는 민 의원이 금융권에도 작은 바람을 일으킬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 의원은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2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임원 여성 할당제다. 남성이 압도적인 임원에서 여성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민 의원은 ‘여성의 자리를 빼지 말고 능력대로 임원에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동일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능력대로 하자는 건 거꾸로 된 논리”라며 “여성 할당제는 기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 의원은 “남성들은 30m, 많게는 50m 앞에서 출발하고 여성들은 뒤처져서 출발하는 게 맞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간 여성의 기회가 박탈돼 왔고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여성 할당제”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두 번째 방법은 임금분포공시제다. 임금분포공시제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남녀 근로자의 임금 차이를 분석하고 그 결과를 근로자 또는 주주에게 공개하는 제도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스위스의 임금분포공시제 도입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녀 임금 격차 비율은 지난해 기준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OECD 평균 임금 격차 비율은 12.9%고, 일본이 23.5%, 미국 18.5%, 프랑스가 13.7%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압도적 1위인 셈이다.
민 의원은 임금분포공시제를 통해 남녀 임금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민 의원은 “기업의 실정을 드러냄으로써 조직 책임자들에게 긴장감을 줄 수 있다”며 “투명성이 주는 여성 차별의 희석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임금분포공시제로 자신의 회사가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개선하려고 할 것”이라며 “여성 차별이 좀 더 옅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금분포공시제의 도입도 시사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여성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임금분포공시제를 시도 해보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그는 일부 젊은 남성들이 성차별을 공감하지 못하는 원인에 대해 ‘착시’라고 했다. 민 의원은 “최근 일시적, 부분적으로 성 평등이 실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는 착시”라고 강조했다. 여성 차별은 여전히 우리가 풀어가야 할 숙제라는 뜻에서다. 그는 “실제로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