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의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폭 늘어났다. 한국은행의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서 11월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982조1000억 원으로 10월 말보다 13조6000억 원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를 작성한 2004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주택담보대출 6조2000억 원, 기타대출 7조4000억 원이 급증했다. 늘어난 기타대출의 대부분은 신용대출(6조5000억 원)이 차지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주담대로 부족한 주택구입 및 전세 자금 수요가 신용대출로 옮겨졌다. 개인들의 주식시장 ‘빚투’(빚내서 투자)가 크게 늘어난 것도 주된 요인이다. 여기에 정부가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키로 하자 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몰렸다. 코로나19 피해에 따른 생활자금 대출 증가세도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대출규제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늘고 있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은행과 2금융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이 모두 103조 원 증가해 작년 같은 기간(48조4000억 원)의 2배를 넘었다. 한은은 10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도 “집값 폭등과 가계부채 급증이 금융불균형 위험을 누적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부채증가세가 소득증가율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3분기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3.2%에 그쳤다. 결국 돈을 벌어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밝힌 우리나라의 2분기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98.6%에 달한다. BIS가 집계하는 43개국 중 7위에 달하는 규모다. BIS는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빠르다고 경고했다.
빚이 늘면 이자부담도 커지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부진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채무상환 능력이 개선되지 않은 채 부채만 급속히 증가하는 것은 금융건전성에 큰 문제가 된다. 앞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되는 국면을 맞을 경우 걷잡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경제 위기는 언제나 과도한 부채 누적으로 인한 금융 부실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당국은 또다시 은행들에 대출을 조일 것을 요구했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상담사를 통한 대출상품 판매 중단, 대출한도 축소, 우대금리 혜택 취소 등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소득대비대출비율(LTI) 같은 고강도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가계대출의 적극적 관리가 물론 시급하지만, 대출총량 규제 등으로 은행들을 찍어누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대출 수요의 성격, 자금흐름, 차주(借主)의 상환 능력 등에 대한 미시적 데이터의 확보와, 이를 활용한 체계적이고 세밀한 부채 관리 대책을 수립·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