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적정 배당’ 수준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배당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상장사의 배당금 규모는 커졌지만, 배당성향(총배당금/순이익) 등 배당 지표는 아직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주주에게 돌아가는 과실이 작다”고 주장한다. 반면 과도한 배당으로 연구개발(R&D)과 투자에 쓸 돈이 줄어들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은행 등 외국인 지분율이 높거나 대주주 지분이 놓은 상황에서 지나친 배당은 대부분 외국인이나 총수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기업들이 투자 기회를 포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많은 기업이 내부에 현금보유(내부잉여금)로만 쌓아놓는 경우들이 오히려 더 흔하게 관찰되고 있다”며 “배당 확대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기업이 투자 기회를 위해 현금을 보유하는 움직임에 대해선 동조하면서도, 잉여 자금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할 땐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이 투자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면, 그래서 이익 잉여금을 투자 기회로 연결할 수 있다면 굳이 배당으로 돌리는 것보다 기업들에 맡기는 게 나을 것”이라면서도 “투자 기회를 적절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배당확대를 통해서 주주가치를 재고하는 게 더 합리적인 방향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황 연구위원은 최근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고 배당을 늘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황 연구위원의 견해다.
그는 “백신 개발, 접종이 내년 하반기 크게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내년 경기 회복세는 하반기로 갈수록 좋아질 거로 예상하고 있다”며 “기업들도 여기에 맞추서 계획들을 잡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배당 요구하는 주주들의 움직임에 대해선 저금리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황 연구위원은 “과거보다 배당 요구가 늘고 있는 것은 저금리 때문”이라며 “어차피 기업이 투자하지 않아서 잉여현금이 늘어난다면 깔고 있지 말고 투자자한테 돌려줘서 배당 수익률을 높이라는 요구인데, 그래야 주식 매력도가 올라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대형 투자기관 같은 곳 중심으로 채권 수익률이 떨어지다 보니 기업에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것보다 주주들한테 적극적으로 돌려주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익이 집중되는 기업들은 배당을 늘릴 여력이 존재할 것인 반면, 매출이 크게 떨어진 기업들이라면 배당을 확대할 여력이 사실상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일부 기업들이 배당을 늘리면서 전체적으로 배당이 늘어날 가능성을 크게 본다”며 “하지만 그렇게 늘어나는 배당들이 일부 소수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을 오히려 더 크게 본다”고 전망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배당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우리나라 기업만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일축했다.
황 연구위원은 “전 세계 기업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이고, 성장률이 떨어지는 경제에서는 배당이 높이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현재 상황에선 투자자들의 요구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업에 ‘팔 비틀기 식’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기업이 돈을 벌면 그 돈으로 직원 임금을 주고 미래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는데 배당 확대와 같은 경영 판단은 기업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가 관리 차원에서의 배당은 필요하겠지만 이를 하지 않는다 해서 주주들에게 손해 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배당하지 않은 부분은 자본금으로 쌓여 오히려 시설 투자 재원이 되기 때문에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배당 등의 주주 친화정책이 주가를 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기업가치를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진그룹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 호텔 터를 팔고 배당을 늘린다 해서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주가를 올렸다면 미래 주주에게 돌아갈 몫이 아닌 현재 주식을 가진 투자자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배당을 늘려 기업의 소득이 가계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조 교수는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큰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배당을 늘리면 정작 과실은 외국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최근 코스피의 신고가 행진 과정을 보면 외국인의 매수세가 두드려졌다. 삼성전자의 경우엔 외국인 지분율이 52%에 달한다. 이 때문에 외국인 주주들의 입김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국내 기업 투자와 고용은 줄고 주주 배당만 늘 것이란 우려다.
결국, 과도한 배당 확대는 내수 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고 되레 기업의 투자 활동만 위축시키는 만큼 강제적으로 돈을 풀게 하기보다 기업에 자율성을 줘야 한다는 게 조 교수의 견해다. 그는 “어떤 학생은 아침에 공부하는 것이 집중이 잘 되고 어떤 학생은 저녁에 공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처럼 학생마다 공부법이 다 다른데 배당만 강조하는 것은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공부 방식을 강제하는 꼴”이라며 “현장 지식은 기업이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만큼 배당 확대나 투자, 임금 인상 등의 경영판단은 기업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투자자가 주가가 올라가지 않으면 팔면 되는 문제이고 얼마든지 손실을 벗어날 방법이 있는데 배당을 강제로 유도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선 배당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보다는 기업의 전체 이익이 늘어 자연스럽게 임금이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