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적십자사가 발주한 혈액백 공동구매 입찰에서 담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녹십자엠에스에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다만 연장된 계약의 매출액까지 과징금 산정 범위에 포함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서태환 부장판사)는 녹십자엠에스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녹십자엠에스의 담합 행위를 인정해 시정명령은 유지하면서도 과징금 산정이 잘못됐다며 전부 취소했다.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은 2011년과 2013년, 2015년 적십자사가 발주한 3건의 혈액백 공동구매 입찰에서 사전에 7대 3의 비율로 예정 수량을 나누고 입찰가격을 합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에 합의된 대로 녹십자엠에스는 70%, 태창산업은 30%의 물량을 써냈고 2개사는 3건의 입찰에서 모두 99% 이상의 높은 투찰률로 낙찰받았다.
이들은 2011년 혈액백 입찰에서 낙찰자 선정 방식이 종전 최저가 입찰제(1개 업체 100% 납품)에서 희망 수량 입찰제로 변경되면서 일부 수량에 대해 경쟁이 벌어지게 되자 경쟁을 피하려고 담합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7월 대한적십자사가 발주한 혈액백 공동구매 단가 입찰에서 예정 수량을 배분하고 입찰가격을 합의한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총 76억9800만 원(녹십자엠에스 58억200만 원, 태창산업 18억9600만 원)을 부과했다.
녹십자엠에스는 공정위 처분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각자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입찰에 참여했을 뿐 담합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태창산업이 혈액백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될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생산 계획을 수립하고 원재료를 구매한 것을 볼 때 두 업체 사이의 담합 정황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태창산업 혈액백 제조 공장을 인수한 직후부터 녹십자엠에스에 혈액백 공급 물량 중 일부를 분배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낙찰자 선정 방식을 예측해 이에 따른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며 "최초 입찰이 유찰된 후 재공고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생산계획을 세운 후 원재료를 구매했는데 이는 두 업체가 낙찰 수량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는 한 설명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녹십자엠에스는 입찰의 시행 여부를 예측할 수 있어서 낙찰 수량 등을 새로 합의한 것이라며 각 담합 행위는 하나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과 2013년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는 5년이 지난 후 이뤄져 처분시효가 지나 위법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2011년 입찰 방식이 변경되자 두 업체는 수익성 악화를 회피하는 동시에 종전과 같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투찰가격과 수량을 합의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2015년 입찰에 관한 합의에 이르기까지 유지됐다"며 "두 업체의 공동행위는 지속해서 수주 물량을 확보하고 가격 경쟁을 회피하려는 단일한 의사와 동일한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두 업체의 연장 계약은 담합의 대상이나 내용에 포함되지 않아 관련 매출액을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공제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두 업체의 연장 계약은 담합 행위를 통해 체결된 계약이 자동 연장된 것이 아니라 별도의 합의에 따라 성립된 별개의 계약"이라며 "대한적십자사는 입찰에 따른 계약의 기간이 종료되는 경우 필요에 의해 새로운 협상으로 별도의 연장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징금 납부 명령 중 연장 계약의 기간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만으로 과징금 부과와 관련한 공정위의 재량권을 고려함 없이 과징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징금 납부 명령은 전부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