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주요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천문한적 규모의 돈을 풀어놓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일본에 이어 미국까지 내년에 집행할 재정규모는 총 2000조 달러(약 1경3238조 원)를 넘는다.
내년 9000억 달러(약 994조 원)의 추가 부양책을 내놓은 미 중앙은행(Fed)를 필두로 각국 중앙은행이 기록적 유동성을 풀어놓은 상황이다. 이에 백신 보급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종료되면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지난 10여년의 저물가 시대를 지나 다시 결합하는 통화와 재정 정책으로 인해 내년 중반까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1분기 후반부터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서 일시적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며 “내년 2분기 소비자물가지수 (CPI)가 전년 대비 2.5%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백신 보급에 따라 일상이 정상화되면 펜데믹으로 쪼그라든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물가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해외에서는 거대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0~1990년대 연평균 18.0%였으나 2000년 이후 선진국은 대체로 2% 안팎에 그치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침체를 동반하는 저물가 현상인 디플레이션 우려에 골머리를 앓아와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죽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을 위해 돈을 풀었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올해 중앙은행이 푼 돈은 실업급여, 휴직수당, 현금성 복지 등으로 기업이나 개인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기업들의 대출도 크게 증가했다. 이에 내년 코로나19 사태 해결되면 억눌렸던 소비가 급격히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미국의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물가지수가 내년 4월 2.4%까지 올랐다가 일시적으로 하락한 후 2022년 1월부터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목표치인 2%를 웃돌 것으로 전망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거대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이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가가 상승하려면 통화량 확대만으로 부족하고 통화유통속도가 빨라져야 하는데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한참 못미쳐서다.
한국은 지난해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를 기록한 바 있다. 올해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대 중반을 기록하며 한은 목표치(2.0%)에 한참 못 미칠 전망이다.
온라인 거래 비중 확대에 따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경쟁적 인하와 세계화로 비교우위가 있는 국가로부터 낮은 가격에 재화를 수입한 점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는 풀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도 인플레이션 압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옥희 IBK투자증권 연구원 “한국과 같은 고령화가 진행된 국가들은 임금 수준은 낮고 저축 성향이 높은 고령층 증가로 인한 소비 위축도 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