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주택시장은 광풍(狂風)의 한 해였다. 집값은 전국구로 치솟으며 유례없는 강세였고, 개정 임대차법(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은 전셋값 폭등이라는 사나운 후폭풍을 몰고 왔다.
정부는 일 년 내내 고강도 대책을 쏟아부었지만 집값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저금리 장기화와 넘치는 유동성, 규제 풍선효과, 임대차법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집값은 가라앉기 무섭게 다시 튀어올랐다.
청약시장 역시 현금과 고가점으로 무장한 '그들만의 리그'로 자리잡았다.
전국 집값 상승률 2주 연속 9년 만에 최고치
지난주 14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값은 0.29% 상승했다. 전 주 0.27% 오르며 8년 7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을 찍었지만 한 주만에 다시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전세 품귀에 전셋값이 급등하자 이에 지친 수요자들이 매매 수요로 돌아서고, 여기에 갭투자까지 가세하면서 집값 상승세가 거세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전국 집값은 정부 고강도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1월 기준 전국 아파트값은 6.15% 올랐다. 경기도가 11.1%, 서울은 2.72% 상승했다. 대전의 누적 상승률은 16.01%, 세종은 행정수도 완성론 여파에 43.64% 폭등했다.
초고강도 대책을 담았던 12·16대책이 나온지 1년이 됐지만 집값은 끝내 진정되지 않았다. 풍부한 유동성과 비규제지역 풍선효과(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오르는 현상)등을 타고 오히려 튀어올랐다. 결국 정부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수원과 안양 등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는 2·20대책을 내놨고, 4개월 뒤엔 규제지역을 대폭 넓힌 6·17대책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6·17대책에서 예상치 못한 지역들이 규제로 묶이자 부동산 민심이 들끓었고, 결국 정부는 다주택자 세제를 강화한 7·10대책과 수도권 공급 대책이 골자인 8·4대책을 연이어 꺼냈다. 대책 발표가 거의 매달 이어진 셈이다.
무엇보다 올해 전세, 매매시장을 모두 뒤흔든 건 7월 속전속결로 통과된 임대차법이었다. 저금리 장기화와 재건축 거주 요건 강화 등으로 전세 매물이 부족한 가운데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물건의 반전세(보증부 월세),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전세 물건이 더 줄기 시작했다. 전월세상한제로 전세보증금을 자유롭게 올릴 수 없게 되자 집주인들이 너도나도 전세보증금 호가를 높였다.
올해 전국 전셋값은 5.7% 올랐다. 서울이 4.5%, 경기도는 두 배 수준인 8.27% 올랐다. 세종은 무려 49.3% 급등했다. 전세시장 불안이 매매시장까지 들쑤시면서 정부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높아질대로 높아진 매매시장의 철벽과 요동치는 전셋값에 2030 젊은층의 영끌은 거세졌다. 이들이 중저가 아파트 시장에서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나서면서 노원구는 올들어 4.30%(11월 기준) 뛰며 서울에서 가장 높은 오름폭을 보였다. 이어 구로(3.44%), 동대문(3.28%), 강북(3.17%), 마포(3.10%) 등이 크게 뛰었다. 고가 주택이 많은 강남(0.33%)·서초(0.41%)·송파(1.25%) 등 강남3구는 서울 평균치(2.4%) 수준도 미치지 못했다.
올들어 서울 강북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강남 아파트값 상승률을 12년 만에 앞질렀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서울 강북 14개 구의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은 12.79%였다. 이는 강남 11개 구 평균 상승률(10.56%)보다 높았다.
결국 정부는 전셋값을 잡기 위해 지난달 19일 전세대책을 발표했지만 전세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세대 위주로 물량이 확보되고, 아이를 포함한 3인 가족은 살기 어려운 호텔 임대 등이 포함되자 비관론이 들끓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올해는 매매와 전세의 동반 상승, 침체기에 있던 지방의 회복세로 전환되면서 가격 강세가 이어졌다"며 "코로나19라는 예상하지 못한 외부 충격이 있었지만 일시적인 안정세가 있었을 뿐 가격 상승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청약시장도 활활 타올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와 민간택지 상한제 시행으로 새 아파트 분양가의 시세 차익이 수억원으로 치솟자 '로또 분양'에 대한 기대감이 갈수록 커졌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 등 정비사업에 대한 칼날 규제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발목을 잡으면서 새 아파트는 나왔다 하면 수백대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 일쑤였다. 실제 올해 서울에선 강동구 상일동 '고덕 아르테스 미소지움'(벽산빌라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서울 내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무려 537대 1이었다. 'DMC SK뷰 아이파크 포레'(수색13구역을 재개발)가 340.3대 1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뒤 두 달만에 최고 신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올해 서울 새 아파트 청약경쟁률은 이날 기준 77대 1에 달했다. 지난해 경쟁률(31.67대1)의 두 배를 넘는 수치다. 전국 평균치(28대1)과 비교하면 3배에 육박한다.
경쟁률이 높아지자 가점 인플레 현상도 심화됐다. 동작구 흑석동 흑석3구역을 재개발하는 '흑석리버파크자이'와 양천구 신월동 일대에서 나온 '신목동 파라곤'에선 청약통장 만점(84점)자가 나왔다. 지난달 청약시장에 나왔던 경기도 과천 지식정보타운 3인방(과천 푸르지오 오르투스·과천 푸르지오어울림 라비엔오·과천 르센토 데시앙) 분양에선 70점이 넘는 고가점자가 수두룩했다. 60점을 넘고도 '광탈'(광속 탈락의 줄임말)하는 청약자들이 쏟아졌다. 올해 청약시장은 60점 이하 가점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청약시장의 가점제 강화는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지만 젊은층의 소외감과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함께 양산했다. 공급물량의 75%였던 투기과열지구의 가점제 물량을 100%로 늘린 3년 전 정책이 젊은층의 패닉바잉으로 이어지고, 이는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서울 외곽지역 중저가 집값까지 뒤흔들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올해는 부동산 시장과 정책의 전쟁으로 시작해 전쟁으로 끝난 한 해였다. 집값, 전셋값 상승과 시세차익 기대감으로 인한 청약시장 과열은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가장 큰 문제는 국토교통부의 수장이 바뀌어도 현 정책의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