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단순한 쇼맨 넘어서 일관적인 이념의 지도자일 수도 이라크 침공·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트럼피즘 부상 계기 개혁 필요한 양당제도 트럼피즘이 나온 원인
트럼프가 이처럼 극우 유권자들의 우상이 되어버린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부동산 재벌이자 유명 TV 쇼 진행자였지만,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이 됐는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대부분의 사람이 트럼프를 광대와 쇼맨, 기회주의자와 가짜 보수주의자, 권력과 관심만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인 인사로 묘사했다”며 “그러나 그의 대표적인 공약과 정책 중 많은 것들은 미국 역사에서 뿌리가 깊은 이념들, 즉 포퓰리즘과 국가주의, 권위주의로 귀결된다. 이제는 트럼피즘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그린버그 럿거스대 역사학 교수는 “국제화와 도시화에 대한 백인들의 반발로 대표되는 20세기 초 우익 포퓰리즘이 트럼피즘의 분명한 기원”이라며 “우익 포퓰리즘의 역사는 오래됐지만 백악관에 입성할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우익 포퓰리즘을 대변하는 대통령의 탄생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1920~1930년대 미국에서 강력한 세력이었지만, 뉴딜의 성공과 2차 세계대전에서의 연합군 승리, 고립주의에 선을 그은 온건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등장 등으로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린버그 교수는 멸종 위기에 처했던 우익 포퓰리즘이 이라크 전쟁과 금융위기로 살아났다고 봤다. 이라크 전쟁으로 공화당의 매파적 외교정책에 대한 보수층의 지지가 약화했으며 2008년 경제 붕괴는 자유무역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는 사회가 다인종, 다국어 사회로 전환하면서 백인 사이에서 인종우월주의가 다시 힘을 크게 받았다. 그린버그는 “트럼프는 기회주의적인 쇼맨일 뿐만 아니라 일관적인 이념의 지도자일 수 있다”며 “1930년대 이후 처음으로 우익 포퓰리즘이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인 트럼프를 통해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미국의 앞날이) 이보다 더 불길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결국 그린버그의 불길한 예언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으로 현실이 됐다. 역사학자들은 1814년 미·영전쟁 당시 영국군이 의회의사당에 불을 지른 이후 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의회가 뚫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뿌리 깊은 양당제도 트럼피즘이라는 괴물이 나온 원인으로 꼽힌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는 “트럼프의 부패하면서도 국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정책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그것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미국의 양당 정치 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트럼프는 억압받는 약자를 위해 워싱턴의 엘리트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는 이미지로 유권자에게 호소했다”며 “50년간 정치에 몸담아온 조 바이든은 그런 엘리트들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사라지더라도 트럼피즘은 계속될 것”이라며 “트럼피즘을 탄생하게 했던 백인 저소득층의 불안과 분노, 좌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경종을 울렸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무려 7400만에 가까운 표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이 득표했다.
※ 용어 설명 트럼피즘(Trumpis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극단적인 정치 이데올로기와 포퓰리즘적인 통치 스타일을 가리킨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을 모토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 극우 보수주의자의 이념과 전 세계에 퍼진 포퓰리즘이 결합했다. 트럼프의 주장에 열광하는 현상도 트럼피즘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