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벼리 산업부 기자
회사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브랜드 이름을 공모하고 있는데 아이디어 좀 말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비록 소비재는 아니지만, 시장의 관심이 커지자 이미지 마케팅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다. 유명 건전지 브랜드 '에너자이저' 같은 식이다.
상금이 꽤 짭짤하니 당첨되면 한턱내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신규 브랜드에는 긴 수명, 장거리 주행, 고속 충전 등 배터리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최대한 많이 담겨야 했다.
서로 나름의 유머를 곁들인 단어들을 내뱉던 중에 '좀비'라는 단어에 꽂혔다.
좀비는 웬만해서 죽지 않는다. 좀비는 일종의 '언데드(Undead)', 그러니까 죽은 상태도 아니고 죽지 않은 상태도 아닌 존재다. 약점이 없진 않지만 웬만해서는 죽을 일이 없다.
체력도 사람에 비할 바가 아니다. 뇌가 무엇인가에 잠식됐으니 힘들다는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나온 '한국판 좀비'는 속도까지 빠르다. 전력 질주로 산 사람들을 쫓는다.
이렇게 '최강의 배터리'를 묘사하며 머리를 굴리던 차에 지인은 뜻밖의 화제를 꺼냈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전기차 화재를 말하며 배터리 업체들이 성능을 최우선시하며 수주 경쟁을 벌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소홀히 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들은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차를 만들기 위해 주행거리, 충전 속도를 높이려 한다. 이 상황에서 한 배터리 업체가 안전을 생각해 성능을 조절한다면 바로 경쟁사에 수주를 빼앗길 것이다.
지인은 이런 구조상 배터리 업계에서 치킨게임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고, 나는 그렇다면 먹잇감을 향해 경쟁하듯 질주하는 한국형 좀비야말로 현재 업계의 초상(肖像)이 아니냐며 무릎을 탁, 쳤다.
'좀비'라는 브랜드로 술 얻어먹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