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력 확대 위한 도구로 자리매김
시진핑, 유엔총회서 탄소 배출 목표 발표로 중국 리더십 강조
미국도 바이든 시대 친환경 정책 속도 낼 듯
그동안 기후변화는 ‘국제 공공재’가 지닌 전형적인 문제를 내포했다. 대응을 취한 나라도 게을리 한 국가도 두루 혜택을 받아서 ‘무임승차’ 욕망에 휩싸인 각국이 노력을 주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국면이 변화하고 각국이 기후변화 구상을 놓고 경쟁을 시작했다.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중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상 처음으로 가상으로 열린 유엔총회에서 “206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로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의 결의 표명은 곧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은 주도면밀하게 타이밍을 잰 것으로 보인다고 닛케이는 분석했다. 유엔총회 직전에는 유럽연합(EU)과 중국의 환경 대화가 열렸고 1개월 뒤에는 미국과 EU의 외무장관 회담이, 이후 2주일 뒤에는 미국 대선이 각각 예정돼 있었다. 중국은 환경 분야에서 미국의 대응이 그만큼 늦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자신이 주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기후변화를 지정학적 목적 달성에 사용하려는 시진핑의 일관된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대책에 소극적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다른 나라도 중국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작년 10월 26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제로로 한다는 목표를 표명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이틀 뒤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미국도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공언한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지난해 가장 먼저 이와 같은 목표를 내건 EU와 함께 주요국이 탈탄소를 향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발표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다른 나라가 행동하면 자국은 가만히 있어도 혜택을 봐서 굳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었기 때문. 이런 역학 관계가 기후변화를 둘러싼 협상과 이행을 실제로 방해했다.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정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닛케이는 “기후변화 분야에서의 노력과 리더십 발휘를 실마리로, 다른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다”며 “환경 대책이 세력 확대를 위한 패권 경쟁의 도구로 명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올리비아 라자드 연구원은 “중국의 목적은 3가지”라며 “첫째, 기후변화와의 전쟁을 기치로 삼아 국제사회에 중국의 리더십을 각인시키는 것이며 둘째로는 환경을 중시하는 EU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세 번째로는 인권침해 등 문제에서 눈을 돌린 채 다른 국가들이 중국과 협력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도 바이든 시대가 오면서 다시 기후변화 이슈에 주도적 역할을 맡으려 한다. 제임스 베이커와 조지 슐츠 등 전 미국 국무장관들은 최근 외교 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최근 수십 년간 미국 경제가 번영을 계속한 것은 정보혁명의 선두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며 “청정에너지로의 전환도 IT 혁명에 필적하는 광범위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는 미국 경제와 정치, 안보 등 어느 측면에서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에서 미·중의 경쟁이 격화하는 것은 EU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많은 국가로 구성된 EU는 복잡한 규칙 협상과 중재 외교가 원래 전문 분야여서 미·중 사이의 ‘중재자’와 직접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는 ‘플레이어’라는 두 가지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발언권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스콧 무어 정치학 교수는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기후변화 대응이 가속했지만, 우려되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며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각국이 기술 패권 다툼을 벌이면서 무역 금지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경쟁과 혁신이 정체돼 결과적으로 기후변화 대책 비용이 급증, 탈탄소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