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대 성장해도 빠른 회복이라 말하기 어려워
단기적으론 피해부문 집중하되 중장기적으론 고용·지속성장 지원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수요 회복에 반도체 등 수출이 회복세를 이어간데다, 정부의 적극적인 부양책도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K방역으로 대표되는 방역체계가 빛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백신 접종과 기술적 반등으로 올해 잠재성장률 수준을 넘는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단기적으로는 피해부문 지원에 집중하되 중장기적으로는 고용과 지속성장을 위한 노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선방했다” 의견일치 =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대비 1.0% 감소했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이래 가장 부진한 성적표다.
다만, 한은 전망치 1.1% 감소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전년(2.0% 성장)과 견줘 3%포인트 하락에 그쳐, 같은기간 5~10%포인트 떨어진 여타국보다 낙폭이 적었다. 아울러 중국(2.3%)을 제외한 주요국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다.
지출항목별로 보면 민간소비는 5.0% 감소해 1998년(-11.9%) 이래 가장 나빴다. 수출도 2.5% 감소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5%) 이후 처음으로 뒷걸음질쳤다. 반면, 설비투자는 6.8%로 2017년(16.5%) 이후 3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소비 역시 5.0% 늘어 2019년 6.6%를 포함해 3년연속 5% 이상 증가세를 유지했다.
성장기여도를 항목별로 보면 내수는 -1.4%포인트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2.3%p)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면, 순수출은 0.4%포인트로 3년연속 플러스로 기여했다. 주체별로는 민간은 -2.0%포인트로 1998년(-5.1%p) 이후 부진했다. 반면, 정부는 1.0%포인트를 기록해 전년(1.6%p)에 이어 1%포인트대 기여를 이어갔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선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며 “제조업 비중이 높고, 온라인쇼핑 기반이 잘 갖춰져 있어 대면 서비스 부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쇼핑이 택배를 통해 잘 이뤄졌다. 하반기 이후 반도체 등 글로벌 수요가 회복된 것도 성장률 선방의 요인이 됐다. 방역체계가 좋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2019년 4분기 GDP와 민간소비를 1로 보면 작년 4분기 각각 99%와 93% 수준에 와 있다. 코로나19 영향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출이 호조를 띠었고, 여력이 있던 재정정책을 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확산되지 않은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민간소비 위축을 수출과 투자, 정부 재정 등에서 많이 상쇄해줬다. 거시경제 운용 측면에서 상당히 선방했다”고 평가했다.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2%대 초반이며, 최근 한은이 추정한 생산가능인구 1인당 실질 GDP 성장률에서 순환요인과 불규칙 요인을 제거한 성장률인 추세성장률이 2.0%를 기록 중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성장세가 현실화한다면 경제가 V자 반등은 물론 꽤 높은 성장세를 기록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박양수 국장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진정된 상황이 아니다. 2%대 초반인 잠재성장률과 추세성장률 수준보다 성장률이 높아지면 회복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3% 성장이어도 회복속도가 빠르다고 말하긴 애매하다”고 말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작년 4분기 수출이 선방하면서 성장률이 높아졌지만 연초엔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소비위축이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2분기를 저점으로 빠르게 반등하던 성장세가 올 초 주춤하다 하반기 이후 올라가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 백신보급이 지연될 수 있고, 코로나19도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향후 경기를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도 올 4분기 집단면역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계획대로 시행되지 않을 경우 경제회복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고통이 큰 사람들이 많다. 정부는 이를 완화시켜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재정은 방법에 따라 지속적으로 나갈 우려가 있다. 집단면역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면 보복소비 등으로 소비가 빠르게 반등할 수 있다”며 “국가부채 우려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성장활력을 높이고 지속성장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단장기 시간을 고려해 세밀한 계획을 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준경 교수는 “불확실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민간부문이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충분히 지원해줘야 한다. 더 나빠지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의 재정지출이 필요하다”며 “민간부문이 활력을 찾은 후에에 정부 빚을 관리하는게 순서”라고 전했다. 그는 또 “다들 빚을 내 버텼다.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빚 후유증이 나타나지 않게 재정을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확대재정정책에 대한 신중론도 있었다. 김정식 교수는 “올해 재정지출을 많이 늘릴 가능성이 있다. 내년 선거도 있어 정치적으로도 올해 경제를 좋게 가져가야할 필요성도 있다. 4차 지원금이나 손실보상제도 확대재정정책과 연관된 것”이라며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재정을 너무 과다하게 사용할 경우 재정건전성 문제가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부투자에 의해 경기를 부양시키려 노력해왔다. 이젠 민간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문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에 따라 구조적으로도 줄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는 직업훈련 등에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