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제정 당시 도입이 추진됐다 무산된 분리공시제가 재추진된다. 분리공시제 시행 시 100만 원은 보통이고 이제는 200만 원도 훌쩍 넘는 휴대폰도 나오는 상황에서 구매 가격이 내려갈지 소비자의 이목이 쏠린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올해 업무 보고에서 분리공시제를 담은 2021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방통위는 5기 정책비전 발표에서도 분리공세제와 함께 장려금 차별규제 완화 등을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분리공시제는 이동통신사가 지급하는 단말기 공시지원금에서 제조사 지원금을 별도로 떼어내 알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출고가 100만 원짜리 휴대폰을 구매할 때 현행 공시지원금이 30만 원으로 공표됐다면, 분리공시제는 10만 원은 이통사가, 나머지 20만 원은 제조사가 제공한다는 것을 나눠 알리는 것이다.
분리공시제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소비자가 단말기 출고가의 인하 여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등 선택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리라 판단한다. 즉 고가 요금제에만 지원금이 쏠리는지 등 소비자의 알 권리 제공의 취지가 있다. 또 휴대폰 유통의 투명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의 셈법은 다소 복잡하다. 영업비밀이 공개됨으로써 가격 인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또 이를 우려한 이통사와 제조사가 지원금을 원천적으로 낮춤으로써 모든 소비자가 다 비싼 가격에 단말기를 구매하게 된 단통법 시행의 부작용이 분리공시제 도입에서도 발생할 수도 있다.
분리공시제는 2014년 단통법 제정 당시 시행령에 포함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쳤으나 막판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부결돼 도입이 무산됐다. 당시 휴대폰 제조사들은 “장려금 규모가 공개되면 해외 시장에서도 동일한 규모의 장려금을 요구해 영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극렬히 반대했다.
한 차례 좌절을 맛본 분리공시제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분리공시제를 공약으로 내건 데다 LG전자가 분리공시제 도입에 찬성하면서 도입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공전하면서 제출된 관련 법안은 결국 자동으로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는 조승래ㆍ김승원ㆍ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리공시제 도입이 포함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 유통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분리공시제 도입 성사 가능성은 과거 두 차례와 비교하면 높아진 것으로 관측된다. 단통법 부작용에 완전자급제나 분리공시제 도입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 한 설문조사에서는 단통법 개선 대안으로 완전자급제나 분리공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25%가량 제시되기도 했다. 또 관련 법안을 제출한 집권 여당이 개헌을 제외한 모든 법안 처리가 가능한 의석수를 확보하고 있다.
한편 분리공시제에 관한 국회 검토보고서의 분석도 제도 도입에 좀 더 우호적인 평가로 선회했다. 앞서 20대 국회 당시 관련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는 “도입 여부의 결정에 있어 규제의 변화가 일으킬 영향이 예측하기 어려워 심도 있는 분석이 선행돼야 하고, 분리공시 도입 시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혜택이 줄어들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부정적 측면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21대 국회서 나온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는 “지원금을 분리공시할 경우 적정 출고가에 관한 판단이 가능해짐으로써 제조업자 간 출고가 인하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제조업자가 이통사에 지급하는 장려금이 위법하거나 부당한 사항이 아닌 이상 이를 비공개할 특별한 사유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소비자에게 단말기 출고가의 인하 여력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분리공시제를 실시할 경우 제조업자가 반드시 출고가를 인하하게 될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고, 이용자에 대한 지원금만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다만 실질적으로 제조업자가 경영상 판단에 따라 가격을 인상하는 결정을 하는 것으로서, 제조업자의 경영상 판단을 분리공시제의 부작용으로 치환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이용자에 대한 지원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분리공시제를 반대한다면 인과관계를 호도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조업자가 이통사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목적 및 이유는 그 금액이 비공개되기 때문이 아니고, 자신이 제조한 이동통신단말장치를 더 많이 판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결국 장려금을 금지하거나, 보다 근본적으로 단통법을 폐지하고 이른바 ‘완전자급제’를 채택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는 한, 현행 제도하에서 지원금 분리공시제를 반대할 근거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