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시장 미ㆍ중 패권경쟁 본격화…배상금 지급방식 합의할까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에서 최종 열쇠를 진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정에너지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공장이 멈추면 관련 정책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원자재 정보 제공업체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 셀의 기가팩토리(전기차 배터리 제조 대형 공장)는 93곳에 달한다. 이에 비해 미국은 4곳으로 23배 가까이 차이 난다.
또 앞으로 2030년까지 중국은 47곳 늘어난 140곳의 기가팩토리를 보유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기간 미국은 단 6곳 늘어나며 10곳이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며 청정에너지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상원 의원과 청정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만약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중국)은 우리의 점심을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효과적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경고를 한 셈이다.
에너지장관 지명자인 제니퍼 글랜홀름 또한 최근 열린 청문회에서 “중국이 이 게임(청정에너지 사업)에 참가해 적극적으로 경쟁하고 있다”라며 “미국에서 관련 일자리들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만약 ITC의 최종 판결이 확정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공장을 멈추게 된다면 관련 일자리나 전기차 생산 등 전반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단순히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 2곳에서 파생될 일자리만 2600개로 추산된다. 더 나아가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받기로 한 포드,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도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바이든 행정부에 최선의 시나리오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합의다.
LG에너지솔루션은 11일 콘퍼런스콜에서 "(배상에 대한 협상은) 작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 진행됐고 오늘 최종결정이 나왔으니 조만간 협상 논의가 시작돼서 진전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며 합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관건은 지급 규모와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2조5000억∼3조 원을, SK이노베이션은 적게는 1000억 원에서 많게는 5000억~6000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이 승기를 잡은 만큼 일각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조 단위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이 당장 지급할 수 있는 돈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유동 자산은 1조3300억 원 규모다. 여기에 배터리 관련 추가 투자 등을 고려하면 배상금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신 LG에너지솔루션에 배터리 매출액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거나 자회사 SKIET의 지분을 일부 주는 식으로 배상을 갈음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작년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매출액 규모는 약 1조6000억 원, 영업이익률은 -20%~-30%이다.
아직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매출액 일부를 지급하는 계약을 맺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배터리 수주 잔액이 70조 원 수준이고 내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밝혔던 만큼, LG에너지솔루션이 이 점을 내세워 로열티 지급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생산업체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경우 올해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상장 후 기업 가치를 약 5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 일부 지분을 LG에너지솔루션에 넘기는 식으로 배상액을 채울 수도 있다.
일정 기간 현금을 나눠내는 식으로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고려 대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11일 콘퍼런스콜에서 합의금 지급 방식에 대해 "현금성이 될지 로열티가 될지, 분납이 될지 등에 대한 방법론을 정하는 것은 구체적인 눈높이가 맞으면 쉽게 타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ITC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를 결정했던 예비심결을 "인용(affirm)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SK이노베이션에 앞으로 10년 동안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배터리 제품들의 수입을 금지하는 제한적 배제 명령(LEO)과 미국 내에서 배터리 제품을 판매하고 유통하는 등 사업을 금지하는 내용의 중지명령(CDO)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