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가 족쇄로…권리 지키기 위해 범법 고민하는 상황도
계약 갱신권 사용하면 세입자로서 더 이상 보호장치 없어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엄정숙 변호사<44ㆍ사진>는 요새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인 엄 변호사는 지난해부터 임대차 분쟁 상담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낸다. 2013년 부동산 전문 변호사가 된 이래 가장 바쁜 나날이다. 지난 여름부터 바뀐 주택 임대차보호법과 상가 임대차보호법 때문이다. 엄 변호사를 만나 임대차보호법이 바꾼 전ㆍ월세시장 풍속도를 들어봤다.
"임대차시장엔 다양한 사례가 있는 데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법을 바꿨다. 임차인(세입자)에게 일방적으로 법이 기울어져 있다." 엄 변호사는 바뀐 주택 임대차보호법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선의가 족쇄가 됐다"며 의뢰인 A씨 사례를 소개했다. 임차인에게 20년 가까이 시세보다 반값에 집을 전세 놨는데 계약 갱신 청구권제(기존 세입자에게 한 차례 전ㆍ월세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 전ㆍ월세 상한제(전ㆍ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제도) 때문에 재산권을 침해받게 된 사례다. A씨는 집주인이 실거주하는 경우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는 법규를 이용, 일단 세입자를 내보낸 후 주변 시세에 맞춰 세입자를 새로 들일 계획이다. 엄 변호사는 "A씨는 악한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선량한 사람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본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런 사람들이 범법을 고민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거꾸로 계약 갱신 청구권이나 전ㆍ월세 상한제으로 세입자 권익이 보호될 수 있지 않냐'고 엄 변호사에게 반문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엄 변호사는 "계약 갱신을 할 수 있으니 한 번은 그럴 수 있다"면서도 "갱신 계약 이후엔 반드시 세입자를 바꾸겠다는 집주인이 많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금 임대인(집주인)과 임차인은 서로 갈등 관계가 됐다"며 "일단 갱신권을 쓰면 세입자로서도 더 이상 보호 장치가 없다"고 말헸다.
임대료 감액 요구권이 확대된 상가 임대차시장 상황은 어떨까. 정부ㆍ여당은 지난해 상가 임대차보호법을 개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은 재난 상황에서 세입자가 상가 주인에게 임대료 감액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엄 변호사 진단은 주택시장과 비슷했다. 그는 "세제 지원이 있긴 하지만 6개월 동안 임대료를 낮추면 임대인도 손해보전이 어렵다"며 "노후 생활비를 벌려는 영세 임대인이 많은데 이런 분들까지 고민해야 했지 않냐"고 했다.
엄 변호사에게 임대-임차인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물었다. 그는 "임대차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를 어떻게 산정할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엄 변호사는 임대-임차인에게도 "명도소송까지 가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처음 계약할 때부터 본인의 권리뿐 아니라 법적 의무를 인지하고 지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