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LH, 블라인드 조롱글 작성자 고발한다는데…색출ㆍ처벌 가능할까?

입력 2021-03-15 17:28수정 2021-03-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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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의 무더기 땅투기 의혹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아니꼬우면 이직하라"는 식의 조롱성 글을 올린 작성자를 색출해 처벌하기로 하자 실효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LH는 지난 9일 블라인드에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작성자를 명예훼손과 모욕,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작성자는 9일 블라인드 게시판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사진출처=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캡처)

"꼬우면 니들도 이직하든가" 블라인드 글에 LH, 법적 대응 시사

작성자는 9일 블라인드 게시판에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작성자는 익명 글을 통해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다",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꼬우면 니들도 이직하든가" 등의 글을 올려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LH는 글쓴이가 현직 직원이 아닌 전직 직원이거나 계정을 도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허위사실 기반의 자극적인 글이 게시된 뒤 다수의 언론에 보도되면서 공사의 명예가 현저히 실추됐고, 이로 인해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저해됐다. 이 글은 부적절한 언사로 LH 직원과 가족, 전 국민을 공연히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시글 작성자가 LH 직원임이 밝혀질 경우 즉각 파면 등 징계 조치하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수사 과정에서 글쓴이가 누구인지 특정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사진출처=팀블라인드 유튜브)

글쓴이 특정될 가능성 작아…블라인드 "전달 드릴 개인정보 없다"

그러나 실제 수사에 들어가더라도 글쓴이가 누구인지 특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블라인드 시스템에 특정인임을 판단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자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다. 블라인드의 이 같은 운영방침에 따라 작성자 색출 등에 실제로 협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블라인드 가입은 회사 이메일 인증을 통해 이뤄지지만, 가입자의 해당 정보는 철저히 암호화돼 있다.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 관계자는 "블라인드는 가입자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떤 개인정보도 내부에 저장하지 않는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가입자에게 요청하는 정보는 이메일이 유일한데, 이마저도 가입과 동시에 파기한다"며 "블라인드의 특허 로직은 재직 여부를 확인함과 동시에 가입 시 입력한 회사 이메일을 영원히 복호화 불가능한 형태로 암호화하며, 사용을 위한 가입자 계정과의 연결고리를 내부에 저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블라인드에서는 사용자가 잊은 비밀번호도 찾을 수 없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사실상 새로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블라인드 측은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가입 당시 입력했던 이메일 정보와 서비스 사용 계정이 정보 구조상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아 암호화된 이메일 정보와 사용자 계정 매칭이 불가능하다"며 "복호화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잃어버린 경우 비밀번호 확인 등을 위한 메일 발송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 관계자는 LH 관련 수사에 대해 "수사는 수사기관의 독자적 영역이므로 블라인드는 요청이 온다면 최선을 다해 협조할 예정이나, 블라인드는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아예 저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설계되어 있어 (수사기관에) 전달 드릴 개인정보가 없다"고 밝혔다.

▲만약 수사 당국이 글쓴이를 특정했다고 하더라도 모욕죄·명예훼손죄 등 법적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연합뉴스)

특정했더라도 법적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피해 대상 없어"

만약 수사 당국이 글쓴이를 특정했다고 하더라도 모욕죄·명예훼손죄 등 법적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LH가 자체적으로 징계를 내릴 수는 있지만, 이 글로 피해를 봤다고 할 만한 이는 불특정 다수인 '국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처벌하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모두 '피해자'가 특정돼야 해서다.

법무법인YK부산의 김범한 형사법전문변호사는 "모욕죄와 명예훼손 같은 경우에는 대상이 특정돼야 한다"며 "그런데 이 글은 대상을 특정한 게 아니고 자신들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 조롱하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돼서 LH 내부적으로 징계는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형사처벌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A 씨도 "고발을 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글쓴이를 잡을 수 있는지 의문이 있다"며 "잡았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보기는 좀 힘들어서 처벌까지 갈지는 애매하다"고 봤다. 그는 "집단이나 구성원 등 피해자가 누군지가 특정이 돼야 하는데 이 글은 '너희들'로 표현을 해버리니까 누구를 지칭한 건지 알 방법이 없다"며 "피해자 특정이 되지 않은 명예훼손은 성립되기 어렵다"며 지적했다.

LH를 대상으로 명예훼손이 성립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글쓴이의 발언으로 인해 사실상 LH에 비난의 화살이 돌아간 건 맞지만, LH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로 했다기보다는 '나는 기득권이지만 너희(불특정 국민)는 그렇지 않다'고 표현한 것에 가까워서 직접적으로 LH의 명예를 훼손하는 인과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바라봤다.

▲한편, LH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뉴시스)

LH 대응에 엇갈린 반응 "색출해야" vs "땅투기 의혹이나 제대로"

한편, LH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엇갈린 반응을 내놓고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색출해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국민들을 조롱한 것은 화나지만 실제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반응도 있다.

30대 직장인 A 씨는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 수사와는 별개로 블라인드 글 관련 수사도 제대로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실제로 처벌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수사 기관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20대 직장인 B 씨는 "솔직히 LH 직원의 발언이 화는 나지만 그 직원이 누군지 밝히는 선례가 있으면 앞으로 블라인드에서 편하게 회사 얘기를 못 하게 될 것 같다. 사실상 처벌도 어렵지 않겠냐"며 "LH는 괜히 블라인드로 물타기 하지 말고 땅 투기 의혹이나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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