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닷컴 물류 예산 75% 줄여 쿠팡과 대비…"이베이 인수·네이버 공동 사업이 선결 과제" 시각도
쿠팡이 5조 원 실탄으로 물류센터를 추가 건립해 전국 석권을 선포하고 마켓컬리도 수도권 이외 지역 서비스를 천명한 가운데 이마트는 온라인 사업인 SSG닷컴의 물류 예산을 대폭 삭감해 대조를 이룬다.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추가 건립에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전국 단위 ‘새벽배송’보다는 전국 110개 점포의 PP센터(Picking & Packing)를 활용한 ‘쓱배송’에 집중하는 한편 이베이코리아 인수전과 네이버와의 공동 사업에 우선 힘을 쏟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커머스와 달리 이마트는 오프라인 점포를 물류 거점으로 삼아 빠른 배송을 실행할 수 있다. 다만, 오프라인 매장은 영업시간 제한이 있어 새벽배송을 하려면 24시간 운영되는 물류센터가 필수적이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마트는 최근 사업보고서에 SSG닷컴의 향후 3년간 투자 계획을 3662억 원으로 공시했다. 올해 897억 원을 투자한 후 내년에는 1793억 원을 배정했다. 2023년 예정된 투자 금액은 972억 원이다. 회사 측은 “물류시설 확충을 통한 유통 환경 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2019년 사업보고서에서 제시한 3년간 1조3118억 원에 비해 크게 낮아진 수치다. 2019년과 2020년 두 해의 사업보고서에서 공통으로 표시된 올해와 내년 투자 계획만 떼어놓고 보더라도 2019년 말 1조947억 원이던 예산은 1년 후 2690억 원으로 4분의1 수준으로 삭감된다.
SSG닷컴의 급격한 투자 예산 감소는 지난해말 정기 인사 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강희석 이마트 대표에게 SSG닷컴 대표를 겸직시킨 시기와 맞물린다. 강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소비재 유통부문 파트너로 일하다 2019년 말 이마트에 대표로 합류했으며 지난해 말부터 커머스 사업까지 맡게 됐다.
강 대표에 앞서 2019년 SSG닷컴 출범을 이끈 당시 최우정 대표는 수년내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11곳(수도권 6개, 주요 광역시 5개)을 건립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현재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는 용인 보정(NE.O 001)과 김포 2곳(NE.O 002, NE.O 003)뿐이다. 이 중 김포 2곳에서만 새벽배송을 한다.
이마트의 SSG닷컴 예산 삭감은 물류센터 추가 건립이 후순위로 밀렸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통상 물류센터 건립에는 적게는 1000억 원, 최신 설비를 갖추면 2000억~3000억 원이 투입된다. 사실상 SSG닷컴의 2년 간 2690억 원이라는 금액은 자동화 설비를 갖춘 물류센터 1개를 짓기도 벅차다. 실제 쿠팡이 대구 달성군 국가산단에 짓고 있는 물류센터에는 3200억 원, 광주 센터도 2200억 원이 투자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통상 물류센터 건립이 건설에만 2년 이상 걸리는 만큼 사실상 수년 내에는 추가 물류센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풀이했다.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쿠팡은 전북 완주에 이어 경남 창원과 김해에 물류센터를 짓기로 하면서 이커머스 업계의 물류센터 확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현재 전국에 170여 개의 물류 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쿠팡이지만 콜드체인을 갖춘 센터를 계속 추가해 전국 단위의 빠른 배송이 가능한 신선식품 캐파를 늘려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경쟁사인 롯데쇼핑의 롯데온도 지난해 11월 수도권 밖으로 진출해 부산·경남권에서 새벽배송 ‘새벽에 ON’을 서비스하고 있고,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 마켓컬리도 최근 김포 물류센터를 추가한 데 이어 수도권 외 지역까지 ‘샛별배송’ 확대를 선언한 상태다. 대전과 세종이 유력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빠른 배송에 물류센터가 필수인 이커머스와는 달리 SSG닷컴은 이마트 점포의 PP센터를 활용해 전국 단위의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 시간 지정 배송인 ‘쓱배송’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만큼 전국 단위 새벽배송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다. 롯데의 부산 새벽배송도 기존 롯데슈퍼의 물류센터를 활용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지방 권역은 단위 면적당 인구가 적어 배송비가 높지만, 객단가가 수도권과 비교해 낮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형마트 매장을 갖고 있는 SSG닷컴이나 롯데온의 경우 영업시간 규제만 풀리면 점포를 이용한 새벽배송이 가능해지는 만큼 굳이 고비용의 물류센터를 지을 필요가 있냐는 시각도 있다.
SSG닷컴 관계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계속 물류센터를 계속 알아보고 있다”면서 “투자는 중장기 계획일 뿐 당장의 집행비는 아니라 회사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와 네이버와의 협력이 우선 순위로 부각되면서 물류센터 건립이 후순위로 미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이베이의 몸값은 3조~5조 원 선이다. 신세계 그룹은 주문 배달 앱인 ‘요기요‘ 인수전에도 참여하고 있고, 최근엔 야구단인 SSG랜더스도 인수한 바 있다. SSG닷컴 예산을 2년 간 1조 원 가량 줄이면서 M&A 및 신사업에 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베이코리아는 G마켓과 옥션 등을 보유한 국내 대표 오픈마켓 업체로 지난해 거래액은 20조 원, 점유율은 12%로 네이버(30조 원, 17%)와 쿠팡(22조 원, 13%)에 이어 3위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거래액 3조9000억 원으로 점유율 2%에 불과한 SSG닷컴이 인수에 성공할 경우 단순에 빅3 이커머스 업체로 뛰어오를 수 있다.
예비입찰에는 이마트를 비롯해 롯데쇼핑과 홈플러스(MBK파트너스), 11번가(SK텔레콤) 등이 참여했다. 최근 롯데쇼핑은 이베이 출신 나영호 본부장을 롯데온 대표로 선임하고,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도 “이베이 인수에 충분히 관심이 있다”고 밝혀 인수전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강희석 이마트 대표도 주총에서 “이베이 인수가 도움이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의 지분 교환을 통한 공동 사업을 ‘새벽배송’ 확대보다 우선 순위에 뒀다는 시각도 있다. 신세계 그룹은 최근 네이버와 약 2500억 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해 ‘혈맹’을 맺으며 새벽배송과 당일배송 서비스는 물론 주문 후 2~3시간 내 도착하는 즉시배송 등 최적의 배송 서비스 구현을 논의 중이다.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는 공동으로 물류 관련 신규 투자까지 검토중이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강 대표가 취임하면서 기존 SSG닷컴의 전략이 방향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 물류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다면 2~3년간 수 천억 씩 쏟아부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직매입 중심 사업의 확대보다는 이베이 인수나 네이버 공동 사업이 더 중요한 과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