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다. 정확히 딱 집어서 설명할 순 없지만, 온몸이 간지럽다. 지독히도 기분 나쁜 가려움. 그중 제일 싫은 건 그 오묘한 기류에 설레는 나 자신.
좋음과 싫음을 정말 감질나게 넘어 드는 불쾌한 설렘이 섬네일을 지배했습니다. 나만 보고 싶었는데… 아니 결코 나만 볼 수 없었던 그 영상이죠.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B(비)대면 데이트’ 이야기입니다.
‘피식대학’은 KBS와 SBS 방송사 출신 공채 개그맨들이 합심해 만든 유튜브 채널입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황극이나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채널을 알렸는데요. 이후 아예 ‘각’ 잡고 상황극에 몰두했죠. 그야말로 자신들만의 유니버스와 부캐(본 캐릭터가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설정한 또 다른 세계의 탄생입니다.
‘B(비)대면 데이트’는 그간 ‘피식대학’이 내놓은 콘텐츠 중 가장 높은 화제성을 자랑하는데요. 이 또한 코로나19가 만든 괴물(?)입니다. 코로나19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시행돼 개발한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카페 사장, 다단계 직원, 중고차 딜러, 언더그라운드 래퍼, 재벌 3세라는 설정의 5명의 남자와 영상통화로 소개팅을 진행하는 콘셉트인데요. 평소라면 꺼렸을 B급 설정의 남자들에게 빠져드는 기묘한 현상이 인기의 큰 축입니다. (알 수 없는 세상)
5명의 소개팅남 중 단연 화제는 ‘카페사장 최준’인데요. 개그맨 김해준이 연기하는 캐릭터죠. 35세의 에티오피아 유학파 금수저에 현재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입니다. 갈고리 같은 머리 스타일에(혹자는 내성 발톱이라고도) 통화 내내 단 한 번도 눈을 피하지 않는 부담스러운 타입이죠. 아닙니다. ‘부담스럽다’라는 말은 너무 부족합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상대인데요.
“제 이름 외자에요, 외자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죠”
“위험한 사람 아니니까 피하지 않기로 약속”
“나 뭐 하는 사람 같아요? 땡! 바보”
“우쭈쭈”
영상 시작 1분도 안 돼 이미 손과 발을 다 잃었습니다.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 기운도 없이 그야말로 대패. 실제로 내 눈앞에 있다면, 주선자의 얼굴이고 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 같은데… 왜 이 조그만 화면을 넘기지 못한 채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준며들다”라는 말도 안 되는 수식어가 생길 만큼 치명적인 이 남자.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나 자신도 부끄럽지만 놓지 못할 마약 같은 매력.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보자”라는 호기로운 자신감으로 버텼는데 다음 영상을 기다리는 나 자신이 괴로워지죠.
댓글에는 같은 심정으로 입덕 부정기를 겪는 수많은 소개팅녀(남자도 포함)들의 고해성사가 이어집니다.
“영상 뜨면 바로 누르는 내 손가락 자르고 싶다”, “누가 볼까 봐 밝기 최저로 해놓음”, “누가 영어자막 좀 달아줘라. 전 세계 사람들도 당해야 한다”, “말투는 극혐인데 정말 듣고 싶은 말이라 미치겠음”, “왜 이걸 남편 몰래 보고 있는 거죠?”
벌써 지치셨나요? 아직 4명의 소개팅남이 남았습니다. 견뎌내야 합니다. 전투 의지를 상실케 하는 소개팅남 앞에서 ‘손절’이라는 승리를 얻어야만 하죠.
그 누구보다도 물건을 팔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다단계 회사 직원 방재호, 중고차 이사직을 맡고 있다는 양아치 허세남 차진석, “누나 내가 사랑하니까”를 외치는 개똥철학 연하남 임플란티드 키드. 정말 어느 한 명 쉽게 넘길 수 없는 기나긴 싸움인데요.
어떻게든 견뎌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등장한 소개팅남 이호창(개그맨 이창호분) 앞에서 말이죠.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전략본부장 이호창. 명함조차 귀티날 것 같은 이 남자. 이 매력 아니 이 뻔뻔함에 할 말이 사라지는데요. 진심 이 세상에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멋진 회사가 있을 것 같고, 그 재벌 3세가 당연히 재계 검색에 있을 것 같은 무한한 상상력을 열어줍니다.
재벌이 본캐가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게 한 이호창은, 뒤늦은 합류가 무색하게 최준 다음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소개팅남이 됐죠.
이들의 영상의 가장 큰 인기요소는 착각하게 하는 아니, “이게 진짜야”라고 믿게 하는 그들의 연기력에 있습니다. 약 10분가량의 영상을 편집 없이 롱테이크로 찍는데, 도대체 왜 이리 잘하는 거죠? 공채 출신 개그맨들답게 원로배우 저리 가라 할 대담한 연기력으로 우리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유니버스’에 손쉽게 안착시킵니다.
개설 2년 만에 구독자 수 80만 명 돌파. 이 추세라면 곧 100만 명 달성은 쉽게 예측되는 순서죠. 펭수, 태민, 정은지, 수현 등 인기 연예인도 해당 채널에 출연하며 ‘팬’이었음을 수줍게 고백합니다.
이들은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의 힘으로 방송계에도 ‘뉴 페이스’로 다시 등장했는데요. 피식대학 출연진들은 MBC ‘놀면 뭐하니’ ‘tvN ‘유퀴즈’ 등에 이미 얼굴을 비쳤고요. 김해준은 최근 서브웨이 광고 촬영을 마쳤죠. 이들의 메인무대는 이제 시작인 셈입니다.
사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불쾌한 삶인데요. 잠시뿐 일줄 알았지만,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갑갑한 현재. 지인들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만남도 모두 다 미뤄두는 지금이죠.
헛웃음뿐이었던 ‘비대면 데이트’를 찐 웃음으로 바꿔준 5명의 소개팅남. 이들이 보내준 웃음처럼, 짜증 났던 코로나 단어들도 언젠간 즐거움을 보탤 날이 있겠죠? 우리는 이렇게 슬기롭게 코로나 시국을 지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