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나 같이 사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입력 2021-04-02 09:25수정 2021-04-2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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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5년 차 이동필 전 농식품부 장관 "귀농·귀촌 정책 분리해서 추진"
"지방소멸 위기, 절실하게 생각…부서 간 칸막이 낮추고 일하는 방식 바꿔야"

▲이동필 전 농림축산품부 장관. (사진=이해곤 기자)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어야지요. 국무위원까지 했지만 고향에서 어머니 모시고 텃밭 가꾸며 노후를 보내고픈 오랜 생각을 실천에 옮겼죠.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서두르냐는 아내의 말에도 장관 퇴임식 하루 뒤에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경북 의성군 단촌면을 찾아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만나면서 가장 먼저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투성이에 까맣게 거칠어진 손. 농사일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다. 역대 최장수 농식품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이제 수수하고 평범한 시골 노인으로 보였다.

단촌은 이 전 장관의 고향이다. 40여 년 전 ‘농민이 왜 못사는지 공부해 오겠다’며 집을 나섰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농식품부 장관을 지낸 뒤 귀향했다. 남들이 흔히 생각하는 은퇴 후의 여유로운 삶이 아닌 직접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뱉은 말을 실천하는 길을 택했다. 옛집이 너무 비좁고 낡아 마당에 ‘사원제(思源齊)’라는 이름의 다섯 평짜리 사랑채를 만들고, 맞은편에는 어머니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애일당(愛日堂)’을 지었다.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잊지 말자는 뜻이란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손. (사진=이해곤 기자)

이 전 장관은 “텃밭이나 가꾸려 했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땅을 놀릴 수 없어 지금은 밭농사 2000여 평, 논농사 800평을 짓는다”며 “주경야독을 하려 했는데 일이 힘들어 밥만 먹으면 곯아떨어진다”고 웃음 지었다.

그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농사꾼 삶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고향을 떠날 때 했던 그의 말처럼 평생 농정연구와 여러 요직을 거치며 농업농촌을 고민했지만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은 또 달랐다. 지난해 봄철 냉해로 복숭아와 자두는 하나도 따지 못했고, 여름 장마에 병해충도 겹쳐 벼 수확량은 20~30%가 줄었다. 콩을 심던 앞 밭에는 일하기 수월하다는 말에 솔깃해 에메랄드그린이라는 관상수를 심었는데 팔 때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선다.

이 전 장관은 “정책을 시행하는 당국이 아니라 대상자의 처지에서 농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정책의 취지를 알지 못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현장의 애로사항을 이해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는 농업관측을 예로 들었다. “해마다 작물별 수급과 가격 등을 예측하지만 막상 이를 활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해마다 무슨 작물을 심어야 할지 알 수 없다”며 “멀리, 넓게 보는 망원경 농정을 현미경처럼 구체적인 현장과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관 퇴임 이후 그가 5급 공무원인 경북도 정책자문관을 맡은 것도 이 간격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는 “막상 고향에 와서 빈집과 지친 농민들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며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촌에 살다 보니 현실이 너무 절박하다고 느꼈고, 마침 ‘변해야 산다’며 동분서주하는 도지사의 청을 받아드렸다”고 설명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의성마늘을 심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 (사진=이해곤 기자)

이 전 장관은 지난 두 해 정책자문관을 지내는 동안 지인들에게 ‘5급이 뭐냐, 체신머리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일주일에 사흘, 텅 빈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민망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이 농촌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문관으로 있으면서 그는 지역특화산업과 6차산업, 청년일자리와 귀농·귀촌, 마을 만들기와 지역개발 등 관련 정책을 살펴보고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농촌을 살릴 수 있을지 고심했다. 전문가들과 ‘농촌살리기정책포럼’을 운영하며 2년간 12차례의 정책토론회와 50여 곳의 현장을 방문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전 장관은 “사과가 유명한 의성·안동·청송을 서로 연계하고 협력해 미국의 나파·소노마밸리와 같은 관광문화와 결합한 융복합산업단지로 조성해보자는 애플밸리 구상도 그중 하나”라며 “어떻게 처리할지는 남은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동안 논의 결과를 9개 분야의 정책과제로 정리, ‘지방소멸 위기와 경북의 농촌살리기’란 보고서를 제출하고 다시 논밭으로 돌아왔다”고 언급했다.

귀향하고 농사를 짓고, 지자체와 현장의 농정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느낀 가장 큰 문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 위험이다. 한때 150여 가구가 살던 그의 고향 마을도 이제는 70가구 정도에 불과하고, 실제 농사를 짓는 가구는 10가구 남짓이다. 이 전 장관은 “어른들만 계시니 어린아이 울음소리는 고사하고 겨우 버티는 초등학교와 대중교통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그나마 지금의 인구라도 유지하려면 더는 젊은이들의 유출을 막고 귀농·귀촌을 활성화해야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일도 아니고 절박함도 부족해 보였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귀농·귀촌의 가능성을 보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만 정작 농촌에 사는 젊은이들을 현지에 잡아두는 데는 소홀한 것 같다고 그는 느꼈다. 도시 젊은이들을 불러들여 영농교육을 시켜 논밭과 농기계 구매를 지원하고, 주택까지 마련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과 위험을 생각하면 현지에서 가업을 잇는 승계농을 육성하고 6차 산업화 등 다양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는 게 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따져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방소멸이 절박한 곳일수록 떠나는 사람을 붙잡고 같이 살자는 간곡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승계농에 대한 상속세 감면, 제3자 승계의 귀농 연계 등 디테일한 대책이 필요하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는 귀농·귀촌 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귀농에 편향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2019년 귀농·귀촌인 46만 명의 대부분이 귀촌인이고 귀농인은 겨우 1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교육훈련이며 자금지원 등 대부분 정책이 귀농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5년간 귀농귀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귀촌인 가운데 지원받은 사람은 중앙정부의 주택 및 시설자금 5.2%, 지자체의 정착자금 6.3%, 시설과 농기계 4.6%에 지나지 않고 교육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78.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의 효과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노모를 위해 만든 ‘애일당(愛日堂)’. (사진=이해곤 기자)

그는 “지금도 농지와 예산 등 자원이나 시장규모에 비해 농가 수가 많은데, 소규모 경작을 하는 농업인을 더 늘여서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지 규모를 가진 네덜란드의 농가인구가 19만 명인 데 비해 우리는 257만7000명, 세계의 식량창고인 호주(45만9000명)와 캐나다(30만9000명), 심지어 미국(230만1000명)보다 많은 상황에서 무작정 농업인을 더 늘리기보다 기술을 가진 전업농의 경쟁력을 높여야 식량자급 등 농업 원래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귀농정책을 지역농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영세 고령농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별도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귀촌은 도시의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한다는 점에서 지방소멸대책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수도권에 사는 400만 명이나 되는 베이비부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개인의 행복한 삶은 물론 천정부지의 아파트값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전 장관은 “총리실이나 행정안전부 등이 주도해 범부처적으로 양도세와 1가구 2주택 중과세 등 족쇄를 풀어야 한다”며 “빈집과 일자리정보 제공이나 농촌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교육, 이사비 지원 등 정책수단을 동원하면 귀촌인들이 편한 마음으로 지방 옮겨가 국토를 넓게 쓰는 국민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농식품부와 시·도가 운영하는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지원정책 등 비슷한 정보를 제각기 제공하고 시·군 농업기술센터별로 특화품목 중심의 영농교육을 하는 것도 개선점으로 지적했다. 중앙정부와 시·도가 제공하는 정보의 내용과 제공방법을 바꾸고, 시군별로 제각기 운영하는 교육과정을 연계해 광역자치단체가 통합운영하면 교육생들이 희망하는 훨씬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농업이 아니더라도 농촌에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도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 귀농·귀촌 교육이 더 다양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그동안의 정책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이 전 장관은 전 청와대 농림수산수석비서관 이었던 최양부 박사가 첫 토론회에서 언급한 말을 인용하며 “농촌 소멸을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며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농촌이 소멸을 자초하게 된 원인을 솔직게 진단하고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농촌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현지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가정을 꾸려 즐겁게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중앙정부의 부서별로 각기 추진하는 산업과 생활환경, 사람 관련 정책을 서로 연계하고,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 간의 기능과 역할을 분담하여 협력해서 일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에 부족한 것이 재정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일하는 방식이고 특화된 지역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기초가 정보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묻자 그는 다산 정약용이 말한 ‘청복(淸福)’을 누리고 싶다고 한다. 듣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무너지는 지방과 농촌의 파수꾼으로서 현장의 목소리는 전하겠단다.

이 전 장관은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학생이 적어 놀랐고, 주민들조차 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문제로 여기지 않아 더욱 놀랐다”며 “지방소멸 문제를 가지고 걱정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지역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때 나라 살림의 책임을 맡았던 공직자의 한 사람으로 지방소멸이란 시대의 과제 앞에서 “힘닿는 데까지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데, 용기 있게 도전하는 농촌의 젊은이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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