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바잉 진정세ㆍ보유세 부담
도봉구 등 일부지역 실거래가 하락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A씨는 얼마 전 이 집을 매물로 내놓은 뒤 더 넓은 중소형 면적의 아파트를 미리 매매 계약했다. 그러나 매물이 팔리지 않자 주변 시세보다 호가를 1억 원 넘게 낮췄는데도 아직까지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새로 산 아파트 잔금 날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A씨로선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 관망세가 짙어지며 '거래 절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매수심리가 확 꺾이면서 거래가 사실상 실종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2·4 공급 대책에 따른 공급 물량 기대감과 '패닉 바잉'(공황 매수) 진정세, 불어나는 보유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부담 등이 맞물려 매매시장의 숨 고르기 양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을 보고 있다.
4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주택 매수우위지수는 77.3로 작년 5월 넷째 주(72.7) 이후 가장 낮았다. 올해 1월 마지막주(25일 기준) 113.4를 기록한 뒤 8주 연속 하락세다. 매수우위지수는 100을 초과하면 매수자가, 100 미만은 매도자가 많다는 뜻이다. 현재 서울에선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강남과 강북이 각각 78.4, 76.1까지 내렸다.
집값 상승세도 주춤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0.05% 올랐다. 2·4대책이 발표되기 직전 0.1%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주간 상승률이 반토막 났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지난해 12월 7520건을 기록한 뒤 1월 5754건, 2월 3853건, 3월 2055건으로 3개월 연속 줄었다. 서울 곳곳에 쌓여있는 아파트 매물은 한 달 전(4만1878건)보다 13.7% 많은 4만7649건에 달한다.
시장에선 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이 위축된 이유로 패닉 바잉 진정세와 전세시장의 안정 등을 꼽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집값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커진 데다 지난해 거셌던 패닉 바잉도 진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향후 주택 공급 상황을 지켜보자는 심리와 금리 인상, 공시가격 인상으로 인한 보유세 부담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매매시장 위축에 집이 팔리지 않아 A씨처럼 고심하는 매도자들이 적지 않다. 온라인 카페에는 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고민에 호가를 크게 낮춰야 한다는 조언의 글이 적잖게 올라오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시장에선 이미 시세보다 호가를 낮춘 매물들이 제법 나오지만 매수 대기자들은 집값이 더 빠지길 기대하는 눈치"라며 "현재 분위기에선 '선(先)매수-후(後)매도' 방식의 거래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집값 본격 조정은 “글쎄”
이를 반영하듯 서울 곳곳에선 실거래가 하락 사례가 나오고 있다. 강남구 개포동 '래미안 블레스티지' 전용면적 59㎡형은 지난 2월 중순 21억 원에 팔렸지만 최근 19억9000만 원에 거래됐다. 한 달 남짓 새 1억 원 넘게 하락한 것이다. 올해 1월 7억3000원에 거래됐던 도봉구 창동 주공3단지 전용 61㎡형은 지난달 5억5000만 원에 팔리며 집값이 2억 원 가량 하향 조정됐다.
다만 집값이 하락 대세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위원은 “5월까지 양도세와 보유세를 줄이려는 절세 매물이 나올 것으로 보여 집값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다”면서도 "일부 지역에선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 행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고, 세금 문제가 마무리되는 6월부턴 시장 분위기가 다시 상승 국면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올해 아파트 입주 물량이 적은 데다 공급 대책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상황이어서 실제 집값 본격 조정 국면에 접어들지는 서울시장 선거 이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