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추억이 담긴 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오랜 기간 한자리에 머물며 골목을 든든히 지킨 '특화 거리'가 코로나 19와 비대면 전환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과 행복이 담긴 장소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 거리는 적막감이 감돈다. 사라져가는 골목 속 이야기를 조명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으로 발 디딜 자리조차 없었던 이곳이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19일 방문한 경리단길은 조용했다. 젊은 ‘힙스터’ 대신 주변 거주민만 길을 오갔다. 즐비했던 카페와 소품 가게도 잠잠했다. 점포들은 비워졌고 문 앞엔 ‘임대’ 팻말만 걸려 있었다. 폐업을 위해 설비를 뜯어내거나, 새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공사 중인 가게가 드문드문 보였다.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경리단길은 ‘○리단길’의 시초다. 지금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이름이 바뀐 ‘육군중앙경리단’이 길 초입에 위치해 경리단길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은 ‘힙(Hip)’의 중심이었다. 이국적 음식을 팔거나, 분위기 좋은 가게가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유행을 좇는 젊은이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늘고, 이색적인 점포들이 속속 문을 열자 상권도 활발해졌다.
그랬던 경리단길의 쇠락은 2018년부터 가시화했다. 상권이 커지면서 임대료가 올랐고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났다.
경리단길 뒤편에 거주한다는 조 모(64) 씨는 “주말이면 길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는데 3~4년 전부터는 많이 조용해졌다”며 “특히 저녁 시간에 조용하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19 확산이 발생하며 주변 상권이 급격히 침체했다.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코로나 19 감염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맹기훈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장은 “코로나 19 영향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펍과 카페가 남아 있던 경리단길은 영업제한·집합금지로 직격탄을 맞았다. 문을 닫은 펍의 개수가 많았고, 큰 식당에도 ‘임대’ 표시가 붙어 있었다.
한때 경리단길에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이었다는 이 모(27) 씨는 “지난해 말 즈음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그는 “카페 영업이 어려워지고 집합제한·영업금지 조치까지 내려지면서 어렵단 말을 들었다”며 “(사장님이)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고 했다.
수년째 경리단길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A 씨는 “지난해 이태원을 중심으로 코로나 19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안 그래도 없던 손님이 더 줄었다”며 “영업제한까지 겹치며 주변에 있던 식당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하던 점심 장사를 하는 가게도 늘었다. A 씨는 “경리단길뿐만 아니라 이태원 인근 가게들이 배달과 점심 장사에 뛰어들었다고 한다”며 “아르바이트생들 월급이라도 주려면 (점심 영업을) 해야 하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들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상인들은 상권 침체가 한두 해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 점포를 운영하는 B 씨(54)는 “이 동네가 죽은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며 “코로나 19 때문에 확 죽긴 했지만 애초에 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료가 오른 것이 1차 문제이겠지만 이미 경리단길을 빠져나간 가게들이 많다”며 “상권의 흐름이 빠르게 바뀐 것 같다. 지원해주겠다곤 하는데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