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거품을 막겠다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청약시장마저 '현금 부자'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HUG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기준월까지 1년 동안 공급된 아파트 분양가 평균)는 3.3㎡당 1353만 원이다. 1년 전 같은 달(1185만 원)보다 14% 올랐다. 서울에선 지난해 말 3.3㎡당 분양가가 처음으로 2800만 원을 넘어서더니 지난달엔 사상 최고가인 2829만 원에 이르렀다. 1년 전보다 6.8% 상승한 값이다.
분양가 통제 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다. HUG는 서울·부산·대구 등 부동산 규제 지역을 고분양가 관리지역으로 지정, 분양가를 심사하고 있다. 2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선분양하려면 반드시 HUG 보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선 사실상 HUG가 분양가를 결정해 왔다. 분양가를 올려받으려는 사업장과 이를 막는 HUG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분양이 미뤄지는 일도 빈번했다. HUG의 분양가 심사가 한동안 '통곡의 벽'이라 불렸던 이유다.
최근 이런 분양가 심사 제도가 '자동문'이 됐다. 공공재개발(공공 참여형 재개발)을 추진 중인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2구역은 지난달 3.3㎡당 최고 4224만 원에 분양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용면적 84㎡형 분양가는 1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흑석동에서 지금까지 공급된 아파트 중 가장 비싼 분양가다. 지난해 청약을 받은 흑석3구역('흑석 리버파크 자이')은 3.3㎡당 2813만 원, 전용 84㎡형은 7억 원가량에 분양했다. 흑석동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지만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을 수용하는 대가로 HUG 심사로 분양가를 책정받았다.
수도권 밖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도 고분양가 책정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분양한 대구 수성구 만촌동 '힐스테이트 만촌역'은 3.3㎡당 평균 2450만 원에 분양됐다. 전용 84㎡형 분양가가 8억9926만 원에 이른다. 대구 분양시장 역사상 가장 높은 분양가다.
이처럼 분양가 상승이 거듭되는 건 최근 HUG가 분양가 심사 문턱을 낮춘 탓이다. 지난해 말 HUG는 주변 구축 아파트 분양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심사했던 기존 방식 대신 현재 시세도 최대 90%까지 반영할 수 있도록 고분양가 심사 기준을 개편했다. 분양가와 매매 시세 간 차이를 줄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고 과도한 분양 차익을 누릴 수 있는 '로또 청약'을 막는다는 명분에서다. 이로 인해 주변 아파트값이 높다면 신규 분양가도 함께 높아질 수 있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분양가가 시세만큼 높아지면 현금 조달 능력이 없는 서민은 청약시장에서도 밀려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대출 규제에서 9억 원이 넘는 조정대상지역 내 아파트 분양권은 중도금 집단대출이 한 푼도 나오지 않는다. 통상 분양 대금에서 중도금 비율이 60%인 것을 고려하면 9억 원짜리 집을 분양받으려면 중도금으로만 현금으로 5억4000만 원(9억 원x60%)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에선 분양가 심사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흑석2구역 분양가가 공개된 직후 "흑석2구역 고분양가 책정은 공공성을 상실한 공공이 주도해서 집값 폭등만 일으킬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라며 분양가 상한제 전면 실시를 주장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에선 각 사업장은 택지비와 건축비에서 일정 범위(가산비) 이상 이윤을 붙여 분양할 수 없다.
다른 쪽에선 분양가를 일방적으로 억제하면 '로또 분양' 단지만 양산하게 된다며 차라리 중도금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는 현실론도 펼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분양가 책정은 '개발 이익을 누가 가져가야 하느냐'는 문제"라며 "사회적 편익과 소비자 이익, 건설 단가, 물가 인상률을 모두 고려해 부담 가능한 선에서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