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 피의자의 수사심의위 악용 막을 필요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처장만 소집이 가능한 수사심의위원회와 공소심의위원회를 설치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 과정에서의 위법성을 따지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심의위 제도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수사심의위원회ㆍ공소심의위원회 운영에 관한 지침을 제정했다.
수사ㆍ공소심의위 지침은 ‘공수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해 위원회에 부의하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심의위를 둔다’고 규정한다. 위원회의 소집과 관련해서는 ‘처장의 요청에 따라 위원회를 소집한다’고 한정했다. 김진욱 공수처장만이 위원회에서 다룰 사안을 부의할 수 있고, 소집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사건관계인의 위원회 소집 신청에 관한 조항을 담아 운영하고 있다. 고소인과 기관고발인, 피해자와 피의자 및 그들의 대리인과 변호인은 수사 중인 검찰청이나 종국 처분을 한 검찰청의 시민위원회에 소집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수사 과정과 공소제기 여부에 대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수사 결과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취지다. 수사기관이 사건의 처리를 지연하거나, 부적절한 처리가 예상되면 피해자도 소집을 신청해 외부 위원들의 평가를 받아볼 수 있도록 했다.
실제로 상관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해 숨진 고(故) 김홍영 검사의 유족과 대한변협이 수사심의위를 개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전직 부장검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검찰은 고발 이후 한 차례 고발인 조사만 진행하고 1년이 지나도록 결론을 내지 않은 상태였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기소권 남용을 방지하고 수사 과정에서의 적정성을 심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공수처 지침에 따르면 사건관계인은 소집을 신청할 수 없고 오로지 처장이 선택한 사건에 대해서만 다룰 수 있어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건관계인의 신청권을 배제한 공수처 수사심의위 제도가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정한 수사와 기소를 위해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본래 취지에 반해 여론전이나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 전 검찰의 기소를 피하기 위해 수사심의위를 신청한 바 있다. 이 지검장은 후보추천위 일정이 공지되기 약 3시간 전 전격적으로 수사심의위 소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 수장으로 막강한 수사ㆍ기소권을 쥔 서울중앙지검장이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본인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의 수사ㆍ기소 방침에 불복한 셈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건관계인의 신청권이 없는 심의위 제도는 애매한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최고위직 인물인 것에 비춰보면 제도의 악용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