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가 있다. ‘비열한 거리(Mean Streets)’는 1973년에 나온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영화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갱스터의 이중성과 비열함이 적나라하게 연출된다. 같은 제목의 한국영화도 있다. 2006년 개봉했던 영화다. 어렵사리 따낸 오락실 경영권마저 보스를 대신에 감방에 들어가는 후배에게 뺏긴 조직의 2인자 병두는 다시 한번 절망에 빠지지만, 그런 그에게도 기회가 온다.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회장이 은밀한 제안을 해온 것. 황회장은 미래를 보장할 테니 자신을 괴롭히는 부장검사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병두, 고심 끝에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배신과 복수가 넘쳐나는 곳이 삼류다. 집권세력은 4년 내내 부동산 문제나 소득주도 성장 등의 문제를 두고 개인과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파묻혀 민얼굴을 보여 주었다. 잇속 챙기기가 있을 뿐 내일의 희망을 얘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나라한 이런 모습은 비열한 삼류들의 그것보다 무엇이 나은지 묻게 된다.
4·7 재·보선 이후에도 민심은 뒷전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자중지란 소리는 만 리 밖에서도 들린다.
대통령 선거를 10개월여 앞두고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대선 경선연기론’을 두고 친문(친문재인)계와 친이(친이재명)계의 갈등이 퍼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과 야당의 경선 일정을 고려해 후보 확정 시기를 9월 초에서 11월 초로 미루자는 친문의 주장에 대해 친이재명계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논의조차 한 적 없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당혹감이 엿보인다. 부동산, 백신 등 민생 개혁을 주도하며 쇄신 드라이브를 걸어도 모자랄 판인데 집안싸움이 볼썽사납다.
“거의 환상적이라고 할 만큼 좋은 관계”(문재인 대통령, 2020년 9월 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라던 당청 관계도 균열이 보인다.
송영길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당이 정책을 주도하겠다”며 부동산과 백신 정책에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재보선 참패를 부른 국정 현안부터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규제 일변도인 정책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부동산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한 보유세·거래세 강화 기조를 수정해 재산세와 양도소득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는 부동산 정책의 일부 수정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투기 억제라는 부동산 정책 기조에선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다.
검찰개혁 역시 지도부에선 최우선 과제에서 제외했지만, 일부 초선 강경파를 중심으로 여전히 중대범죄수사청 설립 등 ‘검수완박’을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 이후에는 검찰개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모두 제 팔만 열심히 흔드는 형국이다. 존경심과 믿음은커녕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임기 5년 차 집권당의 이런 자중지란은 흔치 않다.
어디서 잘못된 것인가. 4·7 재·보선 실패 이후에도 청와대와 여당이 ‘촛불민심’은 여전히 우리 편이라는 무엇에 도취한 것은 아닐까. 민심이 영원히 여당 편인 양 잘못 읽었다. 자금 집권당의 모습은 지난날의 낙승과 완성의 덫에 걸려 앞뒤 분간을 못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한국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나라 안팎으로 잿빛이다. 미국은 금리 인상카드를 만지작하고 있다. 금융과 수출경쟁력의 타격이 불 보듯 뻔하다. 미국 자동차 회사인 GM과 르노는 한국에서 발을 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예금·대출·카드 등 소매금융을 접기로 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과 일본은 신밀월 관계로 접어들었다. 한국은 이들 두 나라는 물론 중국 등 어느 편에 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국 외교의 고립은 심화하고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춘추관에서 열린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란 단어를 43번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그린 등 미래유망 분야에서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도록 투자 확대와 함께 인재양성과 직업훈련 등을 강력히 지원해 나가겠다. 부동산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회군 배경(경제나 부동산 정책)이 미래 세대나 서민들에게 더 나은 앞날을 마련해주기 위한 충정이라면 다행이다. 그게 아니고 반발심이거나 책임 모면 차원이라면 대권가도에 도움이 될지 미지수다.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리려면 이제까지 들인 수배, 수십 배의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 정치 실패가 만병의 근원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가 끝내기라도 잘한다면 지리멸렬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