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보다 공급대책 나서야…당정 정책 엇박자 지적도
부동산 정책이 정쟁(政爭)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갈길을 잃고 있다. 우후죽순 아이디어 차원의 설익은 정책이 쏟아지면서 시장은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당장 여권발(發) 부동산 규제 완화 기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4·7 재보궐 선거 이후 구성된 여당의 부동산특별위원회(부동산특위)가 부동산 규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후퇴시킴으로써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주거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12일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열고 △1주택자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완화 △임대사업자 기존 세제 혜택 폐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등을 논의했다.
부동산특위는 현재 6억 원으로 돼 있는 1주택자 재산세 감면 상한선을 9억 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또 종부세 부과 대상을 현행 공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6월부터 과세가 이뤄지는 만큼 서둘러 이달 중순까지 감면안을 완성할 계획이다.
특히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언급한 LTV 규제 완화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LTV를 90% 이상 확대해 청년·신혼부부 무주택자의 경우 집값의 6%만 있으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문제는 이런 대안들이 정부의 정책 방향과 엇나간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송 대표의 LTV 90% 완화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를 흔들 수 있는 만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1주택자 재산세 감면 상한선을 완화하는 데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종부세 기준 상향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당정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순히 '한 표'를 위해 부동산 공약으로 시장을 더 혼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대출 규제 완화 및 1주택자에 대한 세제 완화 정책은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으로의 회귀라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 집값이 오르는 가장 큰 원인은 공급 부족 때문인데, 시장에 매물을 늘리는 방안이 아닌 대출을 늘려 집을 쉽게 살 수 있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것이다.
주거권네트워크는 1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당은 4·7 보궐선거에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 매서운 심판을 받고도 개혁이 아닌 퇴행적인 주장만 내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주거권네트워크 관계자는 "부동산 정책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니 6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및 보유세 인상을 앞두고도 다주택자들이 버티기에 돌입하는 형세"라며 "진정 서민 주거 안정을 실현하겠다면 세입자 보호 강화와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장에선 매물이 줄어들면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가 집값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5월 7~13일)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는 4만8386건에서 4만7686건으로 1.5%(700건) 줄었다. 경기도는 같은 기간 7만8272건에서 7만7220건으로 1.4%(1052건) 감소했고, 인천도 1만5855건에서 1만5483건으로 2.4%(372건) 줄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갈수록 아파트 매물이 줄다 보니 집값은 상승을 반복한다"며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제대로된 공급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이어 "LTV가 70%를 넘어서면 자칫 집값이 하락할 경우 개인 파산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나치게 규제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LTV를 90% 이상 높이는 문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