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엑소더스… 신흥국, 빚의 악순환

입력 2021-05-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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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의 외국인 주식투자 자료=국제금융센터, 블룸버그
골드만삭스는 지난 4월 6개월 만에 달러 매도 권고를 철회했다. 골드만삭스의 자크 팬들 글로벌 외환전략가는 “여전히 이들 통화(10개 주요 통화)가 달러를 상대로 앞으로 몇 달에 걸쳐 오를 것으로 예상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경제 성장 및 국채 수익률 상승은 단기적으로 달러를 지지할 수 있다”면서 “달러 매도 권고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달러가 오르면 상품 수요가 위축돼 상품 수출 의존도가 큰 신흥국들에 타격을 주고 달러 부채 상환 부담도 커진다. JP모건자산운용의 타이 후이 수석 아시아시장 전략가는 “신흥국 투자는 코로나19 확산세가 통제 아래 놓일 때까지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은 미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를 만회하는 세계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13년이 지난 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대규모 경기부양에나선 미국은 풀었던 돈줄을 서서히 죄며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더딘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부채와 자본 이탈로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가 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해 들어 163억 달러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간 한국도 더이상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부채에 허덕이는 신흥국들=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이달 13일부터 19일까지 글로벌 주식형 펀드의 유출입 내용을 분석한 결과 선진국에 투자하는 주식형펀드에는 114억달러가 순유입됐지만, 신흥국 펀드에서는 12억 달러 증가하는데 그쳤다. 1주일 전 39억 달러에 비해 3분1 토막이 난셈이다.

일부 신흥국들이 인플레이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유출세가 그나마 덜 한 것으로 분석된다. 신흥국들의 기준금리 인상은 3월 연달아 이뤄졌다. 3월 17일 브라질이 기준금리를 기존 대비 0.75%포인트 높은 2.75%로 인상하며 시동을 걸었다. 이는 지난 2015년 7월 이후 첫 금리 인상이다. 다음날인 18일에는 터키가 기준금리를 2%포인트 올려 19%로 설정했다. 19일에는 러시아도 동참했다. 기준금리를 기존 대비 0.25%포인트 높은 4.5%로 인상했다.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면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이 경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가치가 낮아진 신흥국 통화보다는 안전 자산인 미국 달러화를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신흥국 주식 시장에서 외국계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기 쉽다.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대거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최근 코로나19사태 이후 신흥국의 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말 세계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진 부채는 총 277조 달러, 우리 돈으로 30경원에 달한다. 금융 위기 전 22%에 불과햤던 신흥국 비중은 60%에 달한다. 불과 13년 만에 3배 가깝게 급증했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 속도가 빨라지면 신흥국 기업들이 ‘돈맥 경화’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5일 “연준이 1%포인트 깜짝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신흥국의 국채금리(2년물)는 0.47%포인트 오른다”고 추산했다.

최근 원자재 가격의 가파른 상승세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며 신흥국에 대한 우려를 더한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인플레이션 우려는 신흥국 중앙은행에게 통화정책 전환 부담을 안기고 잇다”고 지적했다.

◇ 한국 ‘안전지대’ 아니다=한국은 아직 ‘상황이 나은 신흥국’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신흥국발 위기가 본격화되면 금융시장의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증시에서도 지난해 하반기(7∼12월) 이후 외국인들의 순매도 강도가 커지고 있다. 올해들어서만 외국인들은 주식에서 163억 4000만 달러 어치 자금을 뺐다. 이는 대만 121억 달러, 필리핀 12억9000만 달러, 말레이시아 8억3000만 달러, 태국 18억5000만 달러 등 주요 신흥국 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초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미국의 금리 인상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일시에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세계경제 회복세가 더딘 상황에서 미국 금리 인상이 맞물린다면 신흥국에서의 자본 유출 강도가 예상보다 강해지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유안타증권 김호정 연구원은 “ 추가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할 소재가 확인되고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이 촉발할 테이퍼링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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