껑충 뛴 아파트 포기…실수요자 움직여
공공 정비사업 무풍지대ㆍ민간 재개발 기대감 ‘핀셋 투자’ 늘어
"어차피 오를 지역" 증여도 염두
#. 서울 송파구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30대 회사원 A씨는 요즘 주말마다 강남 일대 빌라촌 임장(부동산 현장답사)을 다닌다. 오는 7월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일찌감치 빌라 매입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강남 일대 빌라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다 가격도 올해 초보다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A씨는 “그래도 아파트보다는 빌라가 저렴하고 강남은 투자 가치도 충분하다”며 “빌라 매물을 계속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권 빌라(연립·다세대주택)시장으로 주택 수요자가 몰리고 있다. 아파트값 급등으로 아파트 매수를 포기한 실수요자들이 강남 빌라 매수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여기에 시세 차익과 향후 재개발까지 노린 투자 수요까지 가세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등 강남 일대에 들어선 빌라를 사려는 수요가 최근 크게 늘고 있다. 강남권의 경우 공공 정비사업 진행 가능성이 작아 현금청산(재개발·재건축 때 보상을 받고 나가는 것) 우려가 없는 데다 향후 시세 차익과 함께 민간 재개발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강남구 역삼동 G공인 관계자는 "강남은 집값과 땅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실거주는 물론 투자 관점에서 빌라 매수에 나서는 분들이 많다"며 "로열층에 가격대도 괜찮은 빌라 매물이 나오자 집을 안 보고 계약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올 들어 강남 빌라 거래량 증가율은 서울 전체 거래량 증가율보다 높았다. 서울부동산광장에 따르면 정부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도심 복합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한 올해 2월 강남구 빌라 거래량은 전년 동월 대비 9.35% 늘었다. 반면 서울 전체 빌라 거래량은 같은 기간 대비 10.5% 줄었다. 이후 3월과 4월 강남 빌라 거래량은 각각 82%와 65%씩 늘었지만 서울 전체 거래량은 35%와 2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공공 주도 개발사업 가능성이 낮은 강남권으로 ‘핀셋 투자’가 몰린 것으로 분석한다.
강남권 빌라 거래가 늘자 매매가격도 상승세다. 역삼동 ‘중앙클래식하우스’ 전용면적 43㎡형은 현재 매매시세가 5억6000만~5억 8000만 원으로 올해 1월 거래가(5억5000만 원)보다 1억 원 넘게 올랐다.
강남 빌라 수요 증가와 빌라값 강세는 전형적인 규제 풍선효과(한쪽을 누르면 다른 한쪽이 튀어 오르는 현상)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아파트 위주로 규제를 강화하자 투자 수요가 빌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민간 재개발 규제 완화 대신 공공 정비사업을 밀어붙이자 공공 개발 가능성이 낮은 강남권으로 빌라 수요가 집중된 측면도 있다. 공공재개발과 도심 복합개발 예정지에서 강남구 등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공공 주도 도심 복합사업의 경우 지난 2월 4일 이후 해당 사업지의 부동산을 구입한 사람은 현금청산 대상이 된다.
역삼동 C공인 관계자는 "어차피 땅값이 계속 오를 강남지역은 공공 주도 개발 가능성이 없고 장기적으로 재개발까지 바라볼 수 있으니 증여나 투자 목적으로 빌라를 찾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울시가 민간 재개발 걸림돌로 평가받던 주거정비지수제를 폐지하는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어 강남권 빌라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강남의 낮은 공공 정비사업 진행 가능성과 서울시 민간 재개발 규제 완화 정책 기조에 힘입어 강남 빌라 몸값이 당분간 계속 오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빌라는 아파트에 비해 환금성도 떨어지고 가격 상승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은 만큼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만 매입에 나서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