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수요 급증에 잇단 악재까지...운임 고공행진
블랙스완 준비...공급망 기업 인수 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례 없는 물류 대란이 발생했다.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초기, 이동 제한으로 항구에 정박해 있는 컨테이너선들이 늘었다. 이후 예상을 넘어선 물품 수요 급증에 컨테이너선이 부족한 상황에 몰렸다. 전 세계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해운업계는 반사이익을 누렸지만, 속내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서다.
글로벌 해운업계 상황은 1년여 만에 정반대로 바뀌었다. 1년 전 중국 공장들이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생산을 중단하면서 해운업체들은 운항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허브인 싱가포르 항구에는 정박한 컨테이너선이 늘어갔다.
상황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역전됐다. 코로나에서 탈출한 중국이 생산을 정상화하면서 공장들이 밀려 있던 주문을 소화, 물류 수요가 급격히 회복되면서다.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의 소비행태 변화도 물류 증가를 부채질했다. 코로나 여파로 집에 머물게 된 사람들의 온라인 주문이 급증한 것이다. 특히 중국산 전자제품과 소비재 수요가 치솟았다. 미국의 중국산 수입이 20%가량 증가했다. 이외에도 아시아 항구에 정박한 컨테이너들은 요가 레깅스, 튀김 기계, 잔디 깎는 기계까지 운송 대기 중인 상품들로 꽉 찼다. 화장지 제조업체 매출은 2주 만에 7배 늘었고 1년 치 재고를 두 달 만에 판매 종료하는 업체들이 속출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이후 미국 최대 항만시설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에 컨테이너선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올 1월에는 미국 두 항구에서 하역을 기다리는 선박이 30척을 넘어섰다.
수요는 급증했지만, 이를 소화할 컨테이너선이 부족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선박 생산이 35% 감소한 여파다. 지난 10년간 폭발적으로 확대된 선박 크기에 비해 이를 수용할 항구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병목현상을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이는 화물 운임의 끝없는 상승을 초래했다. 올 초 미국 텍사스주 한파와 3월 에버기븐호의 수에즈운하 좌초 등 악재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물류대란과 운임 고공행진에 기름을 부었다. 에버기븐호가 좌초된 6일 동안 추산된 손해액만 하루 96억 달러에 달했다.
글로벌 해운컨설팅업체 드류리에 따르면 40피트 컨테이너 운임은 지난해 5월 이후 1년 새 4배가량 뛰었다. 사이먼 헤니 드류리 수석 애널리스트는 “공급망 혼란, 운임 급등 등 모두 그동안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면서 “지난 20년간 이 정도의 혼란을 겪었던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선박 물품이 예정대로 도착했는지를 나타내는 신뢰성은 1월 34.9%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해운업계가 물동량이 늘어난 상황을 마냥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장이 안정되지 않으면 경기회복 둔화 등 역효과가 커질 수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경기 수요가 급속히 개선되는 것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물가 상승에 대한 압박이 높아져 세계 경제 회복에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황기라고 선박 건조에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침체기가 오면 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10년간 지속했던 암흑기가 대표적 사례다.
이에 해운업체들은 더 많은 ‘블랙스완(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이례적인 사건)’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화물 운송업체와 창고 운영자 등 다른 공급망 기업 인수에 나섰다.
세계 5위 컨테이너 선박회사인 하파그로이드는 지난달 아프리카 항로에 강점이 있는 컨테이너선사 나일더치를 인수했다. 지난달 프랑스 선사 CMA CGM은 유럽과 북미 사이를 비행하는 4대의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입했다.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는 지난해 미국의 재고 유통 관리 전문기업인 퍼포먼스팀과 KGH 커스텀 서비스를 인수했다. 운송과 서비스 부문 개선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