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보성 회천면 봉강리에 사는 주인공 일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분단과 대립의 정점에서 다시금 화합을 꿈꾸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의 중심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과 노선을 함께했던 봉강 정해룡이라는 역사적 실재 인물이 있다.
봉강리의 봉서동에는 정해룡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집터 뒤론 거북이 등에 해당하는 봉우리가 둥그렇게 있고, 거북이 주둥이 바로 밑에 집터를 잡았다. 그래서 이 집을 '거북정(停)'이라 한다. 명당에 자리 잡은 이 아름다운 장원엔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배어있다.
호남에서도 손꼽히는 천석지기 부농이었던 정해룡은 일제강점기 여타 지주들이 걸었던 친일의 길과 광복 후 한민당을 택하는 대신 독립운동과 통일된 한반도를 꿈꿨다. 일제 수탈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지역민들에게는 수백 석의 구휼미를 풀었고,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 조선인민당, 근로인민당에 앞장섰다. 그의 선택으로 그의 가솔들은 죽음의 행군과 다름없는 고난의 길을 걸었다. 1980년 이른바 '보성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한 집안에서 32명이 체포된다. 사형과 징역을 받는 등 혼란의 시기에 맞선 결과는 참혹했다.
저자는 한 인간이 20세기 후반을 살아간 궤적을 전개한다. 가족사적 소설 형태로 진행되는 '지난' 이야기지만, 우리 삶과 가까이에 있는 문제가 담겼다.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큰 새의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의 존재, 이데올로기에 직면한 인간의 민낯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