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기후변화 이야기 ③정체된 4년, 안주의 본능

입력 2021-06-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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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현대일렉트릭 사장

미국의 대통령이 바뀐 지 1년이 지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어느덧 잊힌 인물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한국에서의 트럼프는 흘러간 정치인이다. 하지만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정서는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다. 그것은 세계화의 물결에서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전통적 중산층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왜 파리 협정에서 탈퇴했는지, 비록 국제 사회는 정체된 4년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 결정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공화당과 트럼프 후보는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면서 파리 협정이 미국민의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민주당 정부의 협상단이 중국의 사기(hoax)에 당했기에 협정에서 탈퇴해야 한다고까지 역설하면서, 집권 후 협정 탈퇴를 약속한다. 이러한 공화당 주장의 근거는 각국이 제출한 ‘자발적 감축 약속(NDC :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에서 찾을 수 있다. 파리 협정에서 중국은 자국의 탄소배출 원 단위를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60~65% 감축하겠다는 NDC를 제출한다. 이 방식은 중국이 경제 성장을 큰 폭으로 계속한다면 온실가스의 절대량이 늘어나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다.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경제발전의 후발주자인 중국의 입장을 인정한 위대한 타협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러한 타협은 지나치게 중국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약속했던 대로 2017년 6월 파리 협정에서의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공화당은 파리 협정에서 인정한 온실가스 감축이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석유, 가스, 석탄 산업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중국민에게 유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지지자를 설득한다.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대의보다는 현실적 이익이 우선이라는 본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나름대로 정교하게 구성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에너지 정책의 첫 번째 목표인 에너지 독립(Energy Independence)은 미국 내에서의 자원 개발 활성화, 에너지 산업 관련 규제 완화 등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세계 최대 매장량과 생산 능력이 있는 셰일가스를 활용하여 에너지 독립을 넘어 에너지 패권(Energy Dominance)으로 나아가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미국민의 자부심을 북돋운다. 2018년 발표한 6대 에너지 정책은 석유, 가스 개발에 따르는 규제 혁파, 에너지 산업 수출 지원, 그리고 새로운 원자력 산업 활성화(Nuclear Revitalization)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힘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외에 수출까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에너지 정책과 환경정책의 동행(Parallel Implementation)을 강조하지만, 행정부 주요 인사에 석유 산업 이해관계자 또는 파리 협정 반대론자들을 임명하고 환경청 관련 예산을 삭감한다. 이렇게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은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축소되어 가고 있었다.

미래 세대에 건강한 지구를 남겨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선진국의 재정 참여와 온실가스 다량 배출국의 적극적인 감축 노력이다.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필요한 기술과 재정을 누군가가 지원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감축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난 4년 동안 약속했던 100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은 뒷전으로 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물으면서 보냈다. 하지만 미국의 지방 정부와 민간은 나름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연방 정부의 파리 협정 탈퇴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에서는 배출권 거래제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민간 기업은 환경 경영을 단순한 홍보 효과용이 아니라 절실한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신재생 에너지를 100% 활용하겠다는 RE100 등의 노력은 점점 더 확대되어 오늘날 필수 과제가 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씨가 싹트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앞서가는 민간의 모습을 알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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