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 '스텔싱'(Stealthing)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텔싱은 성관계 중 상대방과의 합의 없이 몰래 피임기구를 제거하거나 훼손하는 행위, 상대방이 원치 않는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 등을 말한다. 레이더 등에 탐지되지 않도록 위장하는 군사 기술인 '스텔스'(Stealth)에서 유래한 말이다.
스텔싱은 2014년 캐나다에서 성범죄로 규정된 이후 독일, 스위스, 프랑스, 뉴질랜드 등 국제 사회에서 형사 처벌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선 27일 기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스텔싱을 성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강력하게 처벌해달라는 취지의 게시글이 총 8건 등록됐고 약 5만 명이 동의한 상태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선고가 내려졌던 2019년에는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에’ 스텔싱 처벌 법안을 마련해달라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스텔싱 처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타인에 의해 강요받거나 지배받지 않고 스스로 자율적으로 성적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일부다.
김희정 계명대학교 인권센터 교수는 2019년 법학논문집에 게재한 ‘스텔싱의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한 소고’ 논문에서 “미투(Me Too) 운동으로 인해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의에 의한 성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고, 동의에 의한 성관계의 보호 범주에 스텔싱도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분석했다.
국내 법원도 스텔싱을 성범죄로 인식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올해 2월 법원에서는 스텔싱을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로 보고 이에 대한 민사상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나왔다. 당시 재판부는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을 예방하고 안전한 성관계를 희망한 피해자를 속였다”면서 “성적 자기결정권 및 인격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은의법률사무소 이은의 변호사는 “법원이 불법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한 판결”이라면서 “스텔싱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남녀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합리적이고 건전한 사고와 바람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