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은 빅테크 비판론자 잇따라 기용
레이건 정권 이후 40년 만에 반독점 패러다임 대전환 예고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 실리콘밸리 공룡기업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사실상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 정권 이후 40년 만에 반독점법 패러다임의 대전환에 나서면서 빅테크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지난달 11일(현지시간) 거대 IT 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는 5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 적용대상이 월간 활성 사용자가 5000만 명 이상, 시가총액 6000억 달러(약 679조 원) 이상이라는 점에서 현재 기준으로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 ‘GAFA’로 불리는 4개 기업을 정조준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법안에는 빅테크 기업이 시장에 막 진입한 경쟁업체를 인수하는 ‘킬러 합병’을 어렵게 하고, 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의회의 입법 움직임과 별개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빅테크 비판론자인 팀 우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기술·경쟁정책 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이어 ‘아마존의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난달 의회 인준을 거쳐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에 임명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바이든 행정부가 요직에 빅테크 비판론자를 기용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정권 이래 약 40년 만에 반독점법 운용 원칙 개혁을 위한 포석을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반독점법의 역사는 19세기 ‘석유왕’으로 불린 존 록펠러가 세운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이 미국 석유 시장의 약 90%를 장악하며 독점 횡포를 일삼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1890년 발효된 ‘셔먼 반독점법’으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20세기에 들어서 독과점을 예방하고 불공정 거래 적발과 예방 능력 강화를 골자로 한 ‘클레이튼법’과 FTC 법을 제정하면서 총 3개 법률이 생겨났고, 이를 총칭해 반독점법이라고 일컫게 됐다.
미국의 반독점법은 지난 40년간 ‘규제 완화’와 ‘작은 정부’를 주장했던 레이건 전 정부가 세운 원칙에 근거해 해석되고 집행됐다. 레이건 전 정부는 집권 후 1년 만인 1982년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IBM과 AT&T를 상대로 한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을 단번에 종결시켰다. 법무부가 반독점 최대 판단 기준으로 ‘소비자 이익’을 내세워 법률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IBM에 대한 소송을 취하했고 AT&T에 대해서는 국제전화와 지역 전화 사업부를 분할하는 방안으로 합의하며 소송을 마무리했다.
이는 특정 기업이 독점적인 산업 구조를 형성해도 ‘효율성’ 향상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낮춰 소비자 이익을 높인다면 반독점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관용적’ 개념을 도입한 데 따른 결과였다. 이를 ‘소비자 이익 본위제’라고도 하는데 오늘날까지 반독점법 해석 원칙의 근간이 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IT 플랫폼 기업들이 부상하면서 해당 원칙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에 갓 진입한 신생 업체들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는 동시에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새로운 기업들의 탄생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반독점 패러다임 전환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칸 신임 FTC 위원장이다. 그는 예일대 재학시절인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낮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독점하는 새로운 행태를 보인다”며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격을 낮추는 것만이 소비자 이익이라는 현재의 법률적 판단이 잘못됐다고 일침을 가한 것이다. 빅테크 규제의 이론적 틀을 마련한 칸이 이제 IT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규제하는 칼을 쥐게 됐다.
업계의 최대 관심은 하원이 발의한 법안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플랫폼 독점 종식 법안’ 법제화 여부다. 해당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법무부 또는 FTC가 빅테크 기업들을 쪼개거나 문제가 된 사업부를 강제 매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일각에서는 빅테크 규제를 전담하는 ‘디지털 감독청’ 창설 방안을 거론하는 등 IT 대기업에 대한 공세가 전방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