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의 영향력 더 커질 수도
미국이 디지털 화폐에 속도를 못 내는 배경에는 월가 은행들의 우려와 반대가 있다고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진단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중국 인민은행을 비롯해 주요국들이 속속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CBDC)’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행보다. 미국이 디지털 달러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면 그 파급력은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좀 더 CBDC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은 전날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디지털 화폐, 즉 디지털 달러가 생기면 스테이블 코인도, 가상자산도 불필요해질 것”이라며 “디지털 연구와 관련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뒤 오는 9월 초 CBDC 연구 보고서를 발표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은 그러면서도 기축통화 보유국으로서 제대로 올바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이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CBDC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이 CBDC에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워런을 비롯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CBDC를 도입할 경우 현재 은행의 높은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어 저소득 가구에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CBDC 도입은 17조 달러(약 1경9397조 원) 규모의 달러 예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월가 은행들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은 예금 고객들에게 지급할 이자와 대출 고객에게 청구하는 대출이자의 차액에서 대부분 이익을 얻는다. 또한, ATM 서비스 수수료와 계좌 유지비 등으로 매년 수십억 달러 수입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디지털 달러가 도입되면 이러한 수입을 놓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게 된다. 디지털 달러를 포함한 CBDC는 민간 가상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을 통해 발행되며 디지털 지갑과 같은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덩달아 연준의 영향력도 커지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 때문에 주요 금융회사들은 연준과 의회에 디지털 달러의 출범을 늦추거나 최소한 그들이 이 새로운 화폐의 유통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다만 디지털 달러가 월가는 물론 연준을 포함한 미국 은행 시스템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가 발생해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러를 찾아가게 되면 뱅크런이 은행은 물론 미국 정부 차원의 부담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