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시절 압박이 바이든으로까지 이어져
실리콘 웨이퍼에 5나노 이하 회로 새기는 세계 유일 장비
삼성, TSMC, 인텔 등도 확보 위해 분주
1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 반도체 생산 기업 ASML이 중국에 첨단 노광장비를 수출하는 것과 관련해 허가를 보류했고 이면에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는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네덜란드 측에 수출을 제한할 것을 요청했다”며 “이는 트럼프 전 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입장”이라고 말했다.
ASML이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실리콘 웨이퍼에 5나노미터(㎚) 이하의 회로를 새길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비다. 캐논과 니콘 등 경쟁사는 아직 구형 반도체 제조에 머무는 만큼 전 세계 반도체 회사들은 이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ASML과 접촉 중이다. 삼성전자와 인텔, TSMC 등 세계 반도체 제조업체 3강이 2012년 ASML 지분 일부를 인수하기도 했다.
WSJ는 중국 기업들은 ASML과 단 한 건의 거래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과 네덜란드 관계를 긴장시키는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수출을 허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을 네덜란드 정부에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네덜란드 주재 중국 대사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SML이 중국으로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양국 무역 관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이 제안한 장비 거래는 1억5000만 달러(약 1712억 원) 규모다.
양국 사이에 낀 ASML은 미국의 압박에 불만을 드러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특정 국가의 안보 문제에 있어 수출 통제는 효과적인 도구”라면서도 “그러나 이를 남용할 경우 연구·개발(R&D)을 축소해 중장기적으로 혁신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출 통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글로벌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감소시켜 공급망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바이든 정부 들어 네덜란드 정부의 ASML에 대한 압박 수위는 이전보다 줄어든 모양새다. 트럼프 정권 시절인 2019년 당시 국가안보 부보좌관이던 찰스 쿠퍼만은 네덜란드 외교관을 백악관으로 부른 후 “좋은 동맹국은 중국에 이런 장비를 팔면 안 된다. ASML 장비가 미국 부품 없이 작동하지 않은 만큼 우리는 네덜란드 수출을 제한할 권리가 있다”고 협박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와 같은 직접적인 압박 대신 수출 제한을 공동 대응방안으로 하고자 서방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