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종 피산다나쿤 감독·무당 역 싸와니 우툼마 인터뷰
특히 '랑종'은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영화계가 움츠러든 상황 속에서 지난해와 올해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중 가장 먼저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영화로 기록됐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존재감만큼은 제대로 각인시킨 셈이다.
지난달 '랑종'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과 극 중 무당 '님' 역으로 열연한 싸와니 우툼마와 화상으로 만났다.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태국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담는다. 나홍진 감독이 기획·제작에 이어 시나리오 원안을 집필하고, 반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반종 감독은 "한국이라는 큰 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여 흥분되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그에게 나홍진 감독과의 협업 제안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중압감과 압박감이 상당한 일이었다. 그는 "나 감독님의 빅팬으로서 '이게 실화인가?' 싶었고, 흥분됐지만,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 화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나 감독님이 원하는 걸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 우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싸와니 우툼마 역시 나홍진 감독의 팬이었다고 밝혔다. 싸와니 우툼마는 "두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오디션을 거치게 됐다"며 "꼭 캐스팅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통했다"고 했다.
- 나홍진 감독의 시나리오 원안을 받아들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원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극적인 한 여성의 일생이었다.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인상 깊었다. 시나리오를 받아보기 전까지 태국 무속신앙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리서치를 하면서 태국 무속 신앙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한국 무속 신앙과 태국 무속 신앙에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감독)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일반적인 시나리오와 달리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첫 리딩 때까지도 감독님은 섬세한 가이드를 주지 않았다. 시나리오 안에서 자유롭고 솔직하게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싸와니 우툼마)
- 극 중 밍이라는 한 여성이 온갖 끔찍하고 잔혹한 일을 온몸으로 겪어낸다. 인간의 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대해 감독으로서 고민은 없었나.
"촬영하면서도 영화 찍으면서도 조심스러웠던 부분이다. 나 감독하고도 많은 의견을 나눴다. 여러 장면이나 설정은 시나리오 원안을 기본으로 제가 태국의 무속인을 찾아보면서 봤던 내용을 종합해서 연출됐다. 스토리 전개에 꼭 필요한 장면과 수위다. 필요 없는 건 넣지 않았다. CCTV 설정이나 장면 흐리게 하고 어둡게 하는 등의 효과로 지나치게 잔인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감독)
- 공포물이기 때문에 수위를 조절해야 했을 텐데, 어떻게 균형을 맞췄나.
"처음 생각한 영화의 수위는 15세 이상 관람가 정도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면서 나 감독님과 대화한 결과,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거기에 최종 목표를 뒀다. 각 신의 수위는 나 감독하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한 문제다. 관객은 선정적이고 무섭다고 느끼지만, 실제 화면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감독)
- 싸와니 우툼마는 이전에도 무당 역할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무당 역을 소화하기 위해선 어떤 연구가 필요했나.
"무당을 연기해본 경험이 있다. 랑종에서의 님 역할과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단순한 무당 역할이긴 했다. 랑종에선 무당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 여성의 인생을 그린 캐릭터이지 않나. 본인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이비 무당도 태국에 존재한다. 반면 정말 신과 소통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무당이 있는데, 몇 년 전 개인적으로 영험한 무당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무당이 이번 님 역할을 하는 데 많이 도움 됐다. 반종 감독과 계속 고민하면서 연구하기도 했다." (싸와니 우툼마)
- 배우들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캐스팅 과정과 배우들의 고군분투 작업기가 궁금하다.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전제 조건이 있었다. 유명 배우는 캐스팅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태국인에게 알려진 얼굴로는 현실감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나리오 자체가 어려워서 실력도 있어야 했다. 나 감독하고 의견을 모은 건 영국 배우 중 실력자를 뽑자는 거였다. 그래서 아주 많은 오디션을 통해 맞는 배우를 캐스팅했고, 힘 있는 연기까지 완성됐다. 캐스팅 이후에도 배우들과 워크숍을 통해 장면마다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도록 조율 과정을 거쳤다." (감독)
"TV 드라마, 연극, 독립영화에서 긴 시간 연기 생활을 했다. 캐스팅팀한테 연락받고 두 번의 오디션을 거쳤는데, 제가 태국 북부의 이싼 지방에 대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뽑힌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건 기도문이었다. 태국에서 무속인들은 기도할 때 산스크리트어를 쓰는데, 저는 그 말을 쓸 줄 모른다. 실제 무당처럼 사실적으로 읽기 위해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농담이지만 기도문을 너무 잘 읽어서 진짜 귀신을 부를까 봐 살짝 무서웠다. 하하." (싸와니 우툼마)
- 이번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도전적이었던 지점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밍에게 퇴마 의식을 하는 장면이 어려웠다. 퇴마, 엑소시즘 영화를 보면 기독교적인 장면이 많았는데, '랑종'에선 타이 스타일로 엑소시즘을 연출해야 했다. 너무 드라마 같지도, 영화 같지도 않게 만들어야 하니 압박감을 느꼈다." (감독)
- 극 중 님의 인터뷰 영상이 많은 관객에게 충격을 전해줬다.
"저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에필로그 장면 자체가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고, 또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고 싶다." (싸와니 우툼마)
"나홍진 감독과 나는 어떤 의미라고 결정하고 찍지 않았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관객들이 영화의 엔딩을 통해 본인이 가진 악, 원죄 그리고 본인의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 의심을 하고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