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윤성 얘기다.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되는 순간까지 그는 마스크 속에 숨어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취재진에게 욕설을 하고 발길질을 퍼붓던 일주일 전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머리를 숙이고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형량을 의식해 "사실과 다르게 보도됐다"는 자기변명은 여전했다. 진정성은 없었다.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런 일을…낯짝 좀 보자"
이러한 강윤성의 모습은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제도는 지난 30여 년간 공개와 비공개를 반복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피의자들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다. 포승줄에 꽁꽁 묶인 두 손도 걸러지지 않았다. 1994년 지존파 사건과 1996년 막가파 사건이 대표적이다.
강력 범죄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기 시작한 건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부터다. 신상 공개가 현행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경찰은 피의자들에게 마스크와 모자를 씌웠다.
하지만 이후 유영철ㆍ정남규ㆍ강호순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사회 안전망 확보를 위해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던 중 2009년 일부 언론에서 형이 확정되지 않은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찬반 논쟁이 뜨겁게 타오르던 중 2010년 부산여중생 살인 사건이 터졌다. 언론들은 호송되는 김길태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했고, 결국 국회는 국민감정을 받아들여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
"머리카락으로 감추고, 마스크에 숨고"
피의자 신상공개는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한다.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고,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해야 한다. 청소년 피의자는 제외된다. 결정은 경찰의 내외부 전문가들이 내린다.
신상공개 결정이 나도, 피의자가 얼굴을 감춘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의 '커튼머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재판에 출석할때마다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강윤성도 마찬가지다.
신상공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경찰은 '머그샷'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피의자가 이름과 생년월일, 체중 등이 적힌 판을 들고 얼굴 사진을 찍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호주 등이 실시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제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얼굴은 성형하면 그만이고, 피의자의 범죄 심리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미국은 1996년 메간법(아동성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 실시 이후 신상정보를 공개한 집단의 재범률이 19%를 기록했다. 반대 집단인 22%와 큰 차이가 없다. 별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2만4000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강력범죄(살인ㆍ강도ㆍ강간ㆍ방화) 건수다. 직전 연도보다 다소 줄긴 했지만, 수법이 잔혹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