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브랜드로 교체해줘" 요구에 시공사 계약 해지 속출

입력 2021-09-09 18:00수정 2021-09-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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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브랜드 선호, 잇단 계약해지
건설업계 "희소가치 하락" 난감
"무차별 해지 제도적 조정 필요"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아파트 고급 브랜드를 둘러싸고 정비사업 조합과 건설사 간 파열음이 잇따르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정비시장에서 고급 브랜드 바람이 거세지자 이미 시공사를 선정한 정비사업지에서도 브랜드 교체 요구가 늘고 있어서다. 시공사 대부분이 이 과정에서 난색을 보이고 갈등이 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신월곡1구역 일부 조합원들은 최근 시공사 해지 총회 신청서를 제출했다. 브랜드를 둘러싼 갈등이 원인이었다. 신월곡1구역은 이미 지난 2009년 롯데건설·한화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한 곳으로 시공사가 제안한 '마크원' 브랜드를 달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이 고급 브랜드인 '르엘'이나 '갤러리아 포레'를 요구하며 시공사 해임 동의에 나섰다. 고급 브랜드 도입이 어렵다면 시공사 계약 해지 수순도 밟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 조합도 7월 DL이앤씨와의 시공사 계약을 해지했다. ‘e편한세상’ 브랜드를 '아크로'로 바꿔 달라는 요구를 시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게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브랜드를 둘러싼 조합과 건설사 간 갈등은 지방 정비시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 금정구 서금사재정비촉진구역에서는 서금사5구역과 서금사6구역이 잇따라 시공사를 교체했다. 서금사5구역이 기존 시공사와 결별을 선언한 뒤 지난달 포스코·GS건설 컨소시엄을 새 시공사로 맞이했고, 인근 6구역도 기존 시공사(중흥·반도건설 컨소시엄)와 계약을 해지했다. 부산 괴정5구역, 우동3구역 재개발조합도 같은 이유로 시공사와 결별했다.

광주에서는 지역 내 최대 재개발 사업지인 서구 광천동 재개발 사업 조합이 DL이앤씨 컨소시엄(DL이앤씨·롯데건설·현대산업개발·금호산업)과의 계약 해지에 나섰다. 아크로 적용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던 게 계약 해지의 원인이었다.

잇따른 계약 해지 바람…제도적 조정 필요

정비업계에서 시공사 계약 해지 바람이 부는 건 브랜드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급 브랜드가 적용된 아파트는 랜드마크 단지나 대장주 아파트로 분류돼 그 일대 집값 상승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집값이 전국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프리미엄 브랜드가 집값을 더 끌어올린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조합에서 더 좋은 브랜드로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갈등을 빚거나 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것이다. 당초 중견건설사를 시공사로 확정했다가 최근 집값 상승 여파로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대형사로 갈아타는 움직임도 적지 않다.

건설업계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선별적으로 적용해온 프리미엄 브랜드의 적용 범위를 기준 없이 확대할 경우 프리미엄 브랜드의 희소가치가 그만큼 하락할 수밖에 없어서다.

일각에선 브랜드를 둘러싼 이런 갈등이 건설사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앞세워 수주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먹거리가 줄자 일감 확보를 위해 건설사들이 프리미엄 브랜드 도입을 약속하며 경쟁하는 사례가 빈번해졌고, 이에 너도나도 고급 브랜드를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시공사 교체 기준을 개선하는 등 제도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를 선정할 때 총 조합원의 50% 이상이 참석해 과반수가 찬성해야 하지만 시공사를 해지할 때는 이보다 조건이 덜 까다로워 상대적으로 해지가 쉽다"며 "갈등을 줄이기 위해 제도적인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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